전기차 전략 실패와 중국 시장 점유율 급락, 독일 자동차 거인의 위기가 현실화되고 있다.
순이익 44% 감소라는 성적표에도 강력한 노조의 반발로 구조조정마저 난항을 겪는 중이다.
한때 ‘독일 국민차’로 불리며 세계 자동차 시장을 호령하던 폭스바겐 그룹이 사상 최악의 위기에 직면했다. 그룹 내부에서조차 “현재 사업 구조로는 지속 불가능하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올 정도다. 야심차게 추진했던 전기차 전략의 실패, 최대 시장이었던 중국에서의 급격한 몰락, 그리고 강력한 노조에 발목 잡힌 내부 구조 개혁의 난항. 이 세 가지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거인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단순한 실적 부진을 넘어선 구조적 위기라는 분석이 지배적인 가운데, 폭스바겐은 과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야심찼던 전동화 전략, 발목 잡다
디젤게이트 스캔들 이후, 폭스바겐은 그룹의 명운을 걸고 전동화 전환에 막대한 투자를 단행했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 이하였다. 전기차 수요가 전 세계적으로 둔화한 탓도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내부 역량 부족에 있었다.
특히 그룹의 소프트웨어 개발 자회사인 ‘카리아드(CARIAD)’의 개발 지연은 치명타가 됐다. 소프트웨어 결함으로 포르쉐 마칸 EV, 아우디 Q6 e-트론 등 핵심 신차 출시가 수년씩 지연되면서 시장 선점 기회를 놓쳤다. 야심차게 내놓은 ID 시리즈 역시 테슬라나 현대차그룹의 전기차에 비해 경쟁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시장의 외면을 받았다. 전동화와 소프트웨어라는 미래차 시대의 두 핵심 축이 동시에 흔들리며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 것이다.
기회의 땅 중국의 배신
수십 년간 폭스바겐의 ‘현금 창출원’ 역할을 했던 중국 시장의 붕괴는 위기를 더욱 가속화했다. 중국 자동차 시장이 급격하게 전기차 중심으로 재편되는 동안, 폭스바겐은 변화의 흐름을 읽지 못했다. BYD, 니오 등 현지 브랜드들이 가격 경쟁력과 혁신적인 기술을 앞세워 무섭게 성장하는 사이 폭스바겐의 입지는 급격히 좁아졌다.
과거 내연기관차 시장에서 누렸던 압도적인 브랜드 파워는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현지 합작법인들의 실적은 곤두박질쳤고, 한때 그룹 전체 수익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던 시장이 이제는 오히려 부담 요인으로 전락했다. 글로벌 판매 기반 자체가 흔들리는 심각한 상황이다.
내부의 적, 해법 없는 구조조정
전략 실패와 시장 변화의 결과는 참담한 실적표로 나타났다. 최근 폭스바겐 그룹의 순이익은 44%나 급감했으며, 영업이익률은 반토막 났다. 위기 극복을 위해 대규모 인력 감축과 공장 폐쇄를 포함한 고강도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데 경영진은 공감대를 형성했다.
하지만 실행은 요원하다. 독일 특유의 강력한 노조와 주요 주주인 니더작센 주정부가 구조조정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영진은 비용 절감을 외치지만, 노조는 고용 안정을 요구하며 팽팽히 맞서는 형국이다. 외부의 위협에 대응하기도 벅찬 상황에서 내부 갈등까지 격화되면서, 위기 탈출의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전략, 시장, 조직 구조가 동시에 삐걱이는 총체적 난국에 빠진 셈이다.
서혜지 기자 seog@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