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 너무 많다’는 CEO의 진단, 글로벌 1위의 역설적 고민 시작
전기차 올인 대신 하이브리드 집중, 수익성 개선 위한 대수술 예고
전 세계 자동차 판매 1위 토요타가 대대적인 체질 개선을 선언했다. 지난해 1053만 6807대를 판매하며 6년 연속 글로벌 정상 자리를 지켰지만, 내부에서는 오히려 위기감이 감지된다. 방대한 라인업이 초래한 수익성 악화가 주된 원인으로 지목됐다.
결국 토요타는 과도한 차종을 과감히 정리하고, 강점인 하이브리드에 더욱 집중하는 방향으로 칼을 빼 들었다. 세계 최대 자동차 회사가 ‘많이 파는 것’보다 다른 가치를 좇기 시작한 배경에 시장의 관심이 쏠린다.
너무 많은 차종이 오히려 독이 됐나
성공의 이면에 숨겨진 문제는 ‘너무 많은 차’였다. 최근 취임한 켄타 콘 토요타 CEO는 연구개발(R&D) 부문을 점검한 뒤 “현재 너무 많은 사양과 파생 모델이 개발돼 비용이 증가하고 있다”고 공식적으로 지적했다. 경차부터 픽업트럭, 스포츠카, SUV까지 거의 모든 세그먼트를 운영하다 보니, 부품 공용화의 한계를 넘어 개발 비용과 생산 공정의 복잡성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분석이다.
이는 단순히 비용 문제를 넘어 신차 개발 속도 저하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토요타는 최근 프리미엄 브랜드 렉서스를 통해 개발 중이던 차세대 전기 세단 ‘LF-ZC’ 프로젝트를 전격 중단했다. 당시 렉서스는 “시장 수요 변화와 개발 비용 부담”을 이유로 들었다. 이는 비효율적인 모델을 과감히 정리하겠다는 강력한 신호탄으로 읽힌다.
수익성 낮은 차는 정리, 42년 된 차는 유지
그렇다고 단순히 오래된 차종부터 정리하는 것은 아니다. 토요타의 새로운 구조조정 기준은 철저히 ‘수익성’과 ‘상징성’에 맞춰져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84년 처음 시장에 등장한 ‘랜드크루저 70’ 시리즈다.
무려 42년간 명맥을 이어온 이 모델은 최신 편의사양이나 안전장비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내구성과 오프로드 성능 덕분에 일본과 호주 등 특정 시장에서 대체 불가능한 존재로 꾸준한 수요를 자랑한다.
자신이 타던 차가 단종 리스트에 오른다면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토요타는 판매량이 적더라도 브랜드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모델은 유지하겠다는 전략적 판단을 내린 것이다. 반면, 판매량이 애매하거나 다른 모델과 역할이 겹치는 차종은 우선적인 단종 대상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전기차 올인 대신 하이브리드에 집중하는 이유
이번 전략 변화의 핵심은 전동화 방향성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토요타는 다수의 경쟁사들이 선택한 전기차 올인 전략과 명확히 선을 긋고 있다. 가솔린, 디젤, 하이브리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전기차까지 다양한 파워트레인을 유지하는 ‘멀티 패스웨이’ 전략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는 아키오 토요다 회장이 올해 초 “전기차가 세계 시장의 30% 이상을 차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공언한 것과 정확히 같은 맥락이다. 토요타는 전기차 개발을 지속하면서도, 당분간은 자신들이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한 하이브리드 모델의 생산 능력을 대폭 확대하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결국 이번 구조조정은 무작정 판매량을 늘리는 양적 성장에서 벗어나, 수익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질적 성장으로 기업의 체질을 완전히 바꾸겠다는 선언이다. 세계 1위의 현실적인 고민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서혜지 기자 seog@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