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시 6년 차 ‘사골 모델’의 이례적인 역주행, 신형 공개에도 구형 모델 판매 급증한 사연
1,900만 원대 ‘갓성비’ 트림 인기... 사회초년생과 세컨드카 수요 동시 저격

베뉴 - 출처 : 현대자동차


신차 출시 소식에 기존 모델의 판매량이 급감하는 것은 시장의 당연한 공식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이 공식을 정면으로 깨뜨린 차량이 등장해 화제다. 출시 6년 차에 접어든 현대자동차의 소형 SUV ‘베뉴’가 그 주인공이다.

현대자동차에 따르면 베뉴는 지난 11월 한 달간 1,468대가 팔리며 전월(556대) 대비 무려 164%나 급증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는 올해 들어 월간 최다 판매량이자, 2020년 12월(1,475대) 이후 약 5년 만에 기록한 가장 높은 실적이다.

올해 들어 베뉴가 월 1,000대 이상 판매된 것은 이번이 다섯 번째다. 2022년과 2023년에는 각각 한 번, 지난해에는 단 한 차례도 1,000대 판매를 넘어서지 못했던 것과 비교하면 뚜렷한 수요 회복세다. 일시적인 반등이 아닌, 시장의 평가가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베뉴 - 출처 : 현대자동차


신형 공개가 오히려 불붙인 구형 인기



이번 베뉴의 판매량 역주행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차세대 베뉴가 공개된 시점에 기존 모델의 판매가 폭발적으로 늘었다는 사실이다. 통상 신모델이 등장하면 소비자들은 구매를 미루거나 신차로 눈을 돌려 구형 모델의 재고는 빠르게 소진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베뉴는 달랐다. 업계 전문가들은 신형 공개 이후 오히려 기존 모델의 ‘가성비’가 재조명된 결과라고 분석한다. 신차 가격이 전반적으로 크게 오르면서, 합리적인 가격에 즉시 출고가 가능한 기존 베뉴가 현실적인 대안으로 급부상했다는 설명이다. 신차를 기다리는 대신 검증된 구성을 갖춘 기존 모델을 선택하는 실속파 소비자가 늘어난 셈이다.

베뉴 - 출처 : 현대자동차


출시 6년차 사골 모델의 반전 드라마



베뉴는 2019년 7월 출시 첫해 하반기에만 1만 6,867대가 팔리며 순조롭게 시장에 안착했다. 2020년에도 1만 7,726대를 기록하며 인기를 이어갔지만, 이후 경쟁 모델의 잇따른 출시와 소형 SUV 시장의 경쟁 심화로 판매량은 점차 감소했다.

급기야 2022년부터는 연간 판매량이 1만 대를 밑돌았고, 지난해에는 4,645대까지 떨어지며 부진을 면치 못했다. 국내에서는 큰 폭의 부분 변경 없이 연식 변경만 이어져 ‘사골 모델’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올해 들어 분위기는 180도 달라졌다. 11월까지의 누적 판매량을 바탕으로 4년 만에 연간 1만 대 판매 재돌파가 확실시되고 있다. 시장의 외면을 받던 노장 모델이 화려한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이다.

베뉴 - 출처 : 현대자동차


가성비 재조명을 이끈 스마트 트림



베뉴 역주행의 핵심 배경에는 신차 가격의 전반적인 상승이 있다. 생애 첫 차로 인기가 높은 아반떼는 물론, 경차인 캐스퍼마저 옵션을 추가하면 가격이 2,000만 원에 육박하는 상황이다. 반면 베뉴는 상대적으로 가격 인상 폭이 제한적이었다.

특히 판매 반등의 일등 공신은 1,926만 원에 책정된 ‘스마트 트림’이다. 1열 열선 시트와 열선 스티어링 휠, 8인치 디스플레이 오디오, 후방 모니터, 스마트키 등 사회초년생이나 여성 운전자들이 선호하는 핵심 편의 사양을 기본으로 탑재하면서도 합리적인 가격을 유지해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이는 경제적인 차량을 찾는 사회초년생과 운전이 편리한 세컨드카 수요를 동시에 만족시킨 전략으로 평가받는다.

한편, 업계에서는 2세대 베뉴의 국내 출시 가능성은 낮게 보고 있다. 경형 SUV 캐스퍼와 신형 소형 SUV 코나 사이에서 판매 간섭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에 따라 베뉴의 ‘가성비 역주행’은 당분간 현행 모델을 중심으로 계속될 전망이다.

서혜지 기자 seog@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