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최초의 4도어 5인승 구조, 엔진 대신 4개의 모터를 품었다
애플 출신 디자이너의 손길과 삼성 OLED로 완성된 미래지향적 실내
페라리가 지난 26일, 브랜드 역사상 첫 순수 전기차 ‘루체(Luce)’를 세계 최초로 공개했다. 단순한 엔진 교체가 아니다. 이탈리아어로 ‘빛’을 의미하는 이름처럼, 페라리는 루체를 통해 전동화 시대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한다. 핵심은 압도적인 성능, 미래지향적 디자인, 그리고 실용성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요약된다. 과연 페라리는 내연기관의 감성 없이도 운전자의 심장을 뛰게 할 수 있을까.
페라리는 왜 4도어 5인승을 선택했을까
기존 페라리의 이미지를 떠올린다면 의아할 수 있다. 루체는 브랜드 최초로 4도어 5인승 구조를 채택했다. 운전자 중심의 2인승 스포츠카라는 공식을 과감히 깨고, 최대 5명까지 탑승 가능한 그랜드 투어러(GT) 영역으로 발을 들인 것이다.
이는 페라리의 고객층 확대를 의미한다. 고성능을 즐기면서도 일상적인 주행과 가족과의 이동까지 고려하는 새로운 수요를 겨냥한 전략적 선택이다. 더 이상 특별한 날에만 타는 차가 아닌, 매일 함께할 수 있는 페라리를 제안하는 셈이다.
애플의 감성이 녹아든 미래지향적 디자인
디자인에서부터 혁신이 돋보인다. 루체의 외관과 실내는 애플의 전설적인 디자이너 조너선 아이브와 마크 뉴슨이 설립한 ‘러브프롬(LoveFrom)’과의 협업으로 탄생했다. 군더더기 없는 실루엣과 유리로 감싼 듯한 ‘글래스 하우스’ 스타일은 미래에서 온 자동차를 보는 듯한 인상을 준다.
실내는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절묘한 조화가 특징이다. 삼성디스플레이의 선명한 OLED 패널 4개가 적용됐지만, 운전의 재미를 위한 물리 버튼과 다이얼은 그대로 남겨뒀다. 전용 키를 꽂으면 펼쳐지는 웰컴 시퀀스는 전기차에서도 페라리만의 감성적인 경험을 놓치지 않으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숫자로 증명된 압도적인 고성능
가장 궁금했던 성능은 기대를 뛰어넘는다. 루체는 각 바퀴에 달린 4개의 전기 모터로 합산 최고출력 1050마력이라는 막강한 힘을 뿜어낸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 2.5초, 최고속도는 310km/h에 달한다.
122kWh 용량의 대용량 배터리를 탑재했지만, 페라리는 기술로 무게의 한계를 극복했다. 배터리 팩을 차체 구조의 일부로 설계해 강성을 높이고, 정교한 토크 벡터링 기술로 2260kg의 차체 무게가 약 400kg 이상 가볍게 느껴지도록 만들었다. 1회 충전 시 주행 가능 거리는 530km로, 장거리 주행에도 부족함이 없다.
페라리는 충전과 사운드 같은 디테일에도 공을 들였다. 800V 고전압 시스템을 기반으로 최대 350kW급 초급속 충전을 지원해, 단 20분 만에 약 70kWh를 충전할 수 있다. 인위적인 가상 사운드 대신, 실제 구동계의 진동을 증폭시켜 실내로 전달하는 방식을 택해 자연스러운 주행 감각을 살렸다.
루체의 가격은 52만 유로(약 9억 1140만 원)에서 시작한다. 만약 당신이 9억 원대 예산으로 궁극의 전기차를 고민한다면, 루체는 분명 강력한 후보가 될 것이다. 국내 출시는 내년으로 예상되며, 페라리가 열어젖힌 새로운 전동화 시대에 대한 시장의 반응이 주목된다.
오종학 기자 fivejh@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