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국산 최고급 세단 자부심…제네시스와 SUV에 밀려 설 자리 잃어

플래그십 세단 시대의 종말, 기아의 시선은 이제 전기차와 PBV로



기아의 플래그십 세단 K9이 14년 역사의 막을 내린다. 한때 국산 최고급 세단의 자존심으로 불렸지만, 최근 급격한 판매 부진을 겪으며 입지가 크게 흔들렸다. 시장에서는 제네시스와의 경쟁 심화, 그리고 기아의 전동화 전환 전략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브랜드의 얼굴이었던 한 모델의 퇴장 뒤에 숨은 시장의 거대한 흐름이 감지된다.

업계에 따르면 기아는 올해 말을 끝으로 K9 생산을 종료하는 방안을 확정했다. 페이스리프트나 풀체인지 계획은 물론, 후속 모델 개발 계획도 현재로서는 없는 것으로 알려져 사실상 단종 수순에 들어갔다.

K9은 2012년 오피러스의 후속으로 등장해 기아의 기술력을 상징하는 모델이었다. 2018년에는 2세대 모델을 출시하며 기업 임원 의전차량 등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영광은 길지 않았다. 2022년 연간 6,585대를 판매하며 선방했지만, 2023년 3,898대로 판매량이 급감했다. 지난해에는 1,581대까지 주저앉았고, 올해 상반기 판매량은 734대에 그쳐 역대 최저 실적이 유력한 상황이다.

제네시스의 벽을 넘지 못하고 판매량이 급감했다



판매 부진의 가장 큰 원인은 프리미엄 시장의 경쟁 구도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제네시스 G80과 G90이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하면서 K9의 존재감이 희미해졌다. G80은 연간 4만~5만 대, G90은 1만 대 안팎의 안정적인 수요를 확보하며 K9을 압도했다.



여기에 현대차 그랜저가 차체를 키우고 고급 사양을 대거 탑재하며 K9과의 경계를 허문 것도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입장에서 수천만 원을 더 주고 K9을 선택할 명분이 부족해진 셈이다. SUV 시장의 확대도 대형 세단에는 악재였다. 과거 세단의 전유물이었던 승차감과 정숙성을 갖춘 대형 SUV가 대안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기아는 K9 대신 전동화와 PBV를 선택했다



시장의 흐름에 맞춰 기아는 K9을 단종하고 확보된 생산 능력을 미래차 사업에 집중한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전동화 시대를 선도하겠다는 전략이다.



기아는 2030년까지 EV2, EV4, EV5 등을 포함해 총 14종의 전기차 라인업을 구축할 계획이다. 목적기반차량(PBV) 사업도 본격화한다. 최근 생산을 시작한 PV5를 필두로 PV7, PV9 등 다양한 모델을 순차적으로 선보여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다.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개발 역시 속도를 낸다. K9의 단종은 단순히 한 모델의 퇴장을 넘어, 내연기관 대형 세단 시대가 저물고 전동화와 소프트웨어 중심의 모빌리티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평가된다.

오종학 기자 fivejh@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