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후 중풍으로 몸 마비됐지만… 동료들 위해 펜 놓지 않은 진짜 이유
정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홍지민의 뒤늦은 고백
뮤지컬 배우 홍지민이 최근 광복절을 맞아 아버지를 떠올렸다. KBS ‘불후의 명곡’ 광복절 특집 녹화를 마친 뒤 개인 유튜브 채널을 통해서다. 그는 “이맘때쯤 되면 친정아빠 생각이 많이 난다”며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홍지민의 부친은 독립운동가 홍창식 선생이다. 그의 아버지가 16세라는 어린 나이에 목숨을 건 항일 운동에 뛰어들었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가 평생을 바쳐 지켜낸 것은 조국의 독립, 그 하나만이 아니었다.
16살 소년이 군수물자를 폭파해야 했던 배경
홍지민은 이제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되어 아버지의 어린 시절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그는 “아이를 키워 보니 어떻게 16살 때 독립운동을 할 수 있었을까 싶다”며 먹먹함을 감추지 못했다.
홍창식 선생은 1942년, 16세의 나이로 독립운동 단체 ‘백두산회’에 가담했다. 그의 임무는 함경북도 성진 일대에서 일본으로 향하는 군수 물자를 폭파하는, 그야말로 목숨을 건 일이었다.
결국 이듬해인 1943년 일제 경찰에 체포돼 치안 유지법 위반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김천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그는 감옥 안에서 마침내 해방을 맞이했다.
해방 후에도 멈추지 않은 아버지의 또 다른 헌신
해방의 기쁨도 잠시, 홍 선생은 고문의 후유증으로 중풍을 얻어 왼쪽 신체가 마비됐다. 전쟁은 끝났지만 그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쓸 수 있는 오른손으로 펜을 다시 잡았다.
함께 독립운동을 했지만 자료 부족이나 글을 모른다는 이유로 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동료들을 위해서였다.
그는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이들의 서류와 자료를 작성하며 남은 생을 바쳤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홍지민은 “아버지가 내가 20살 때 돌아가셨는데, 그때는 너무 어려서 그 위대한 업적의 의미를 깊이 알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우리 아빠가 너무 자랑스럽다, 멋있다, 사랑한다’는 말을 더 많이 해 드리지 못한 것이 늘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는 “살아 계셔서 내가 방송하고 공연하며 여우주연상을 받는 모습까지 다 지켜보셨다면 정말 좋아하셨을 텐데”라며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을 전했다. 수많은 이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의 평범한 일상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그는 아버지의 삶을 통해 다시 깨닫고 있었다.
조선미 기자 jsmg@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