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신고 다니는 신발에는 생각보다 많은 ‘몸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사진 : 정다예의 필라테스 / newswa
오래 신은 운동화 한 켤레를 꺼내 밑창을 한번 살펴보자. 양쪽이 비슷하게 닳아 있는 사람도 있지만, 유독 한쪽 뒤꿈치가 더 많이 닳거나 한쪽 바깥쪽만 눈에 띄게 마모된 경우도 있다.

평소에는 특별한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다가 신발을 보고 나서야 “내가 이렇게 걷고 있었나?” 싶어지는 순간이다.

그렇다면 신발 한쪽이 더 닳았다는 것은 몸이 틀어졌다는 뜻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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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이 한쪽만 닳으면 몸이 틀어진 걸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사람의 몸은 애초에 완벽한 좌우 대칭이 아니다. 평소 서 있는 습관이나 걷는 방식, 신발의 형태, 활동량 등에 따라서도 밑창의 마모 패턴은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신발 밑창만 보고 골반이나 척추가 틀어졌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오래 신은 신발마다 비슷한 위치가 반복해서 닳는다면 한 번쯤 내 움직임을 살펴볼 필요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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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걸을 때 정말 양쪽 다리를 비슷하게 사용하고 있을까?

걷기는 단순히 다리를 앞으로 내미는 동작이 아니다. 발이 바닥에 닿고, 발목이 움직이며, 무릎과 고관절이 충격을 받아들인다. 그 움직임은 골반과 몸통으로 이어지고, 반대쪽 팔의 움직임까지 더해지면서 몸 전체가 자연스럽게 앞으로 나아간다.

이 과정에서 어느 한 부분의 움직임이 줄어들거나 특정 방향을 더 편하게 사용하는 습관이 생기면 몸은 다른 곳에서 그 움직임을 대신한다. 한쪽 다리에 조금 더 오래 체중을 싣거나 한쪽 골반을 더 많이 사용하고, 한쪽 발로 바닥을 더 강하게 밀어내는 식이다.

이런 차이는 일상에서 쉽게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작지만 수천 번, 수만 번의 걸음이 반복되면 신발 밑창에 조금씩 흔적으로 남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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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대칭’보다 몸의 선택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좌우가 다르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주 사용하는 손이 있고, 편하게 서는 다리가 있으며, 익숙한 움직임의 방향이 있다. 완벽한 좌우 대칭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더 중요한 것은 필요할 때 반대쪽도 사용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평소 오른쪽 다리에 기대 서는 습관이 있더라도 왼쪽 다리로 체중을 옮겼을 때 안정적으로 버틸 수 있다면 몸은 여전히 여러 가지 움직임의 선택지를 가지고 있다.

반대로 한쪽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만 익숙해지고 다른 쪽에서는 균형이 쉽게 흔들리거나 움직임이 제한된다면 몸이 사용할 수 있는 선택지는 점점 줄어들게 된다.

그래서 운동은 몸을 억지로 완벽한 대칭으로 만드는 과정이라기보다, 평소 사용하지 않던 방향과 움직임을 다시 경험하면서 몸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을 늘려가는 과정에 가깝다.

필라테스는 ‘다른 쪽’을 다시 경험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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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테스에서는 두 다리를 동시에 사용하는 동작뿐 아니라 한쪽 다리로 체중을 지지하고, 골반을 안정시키고, 발에서 몸통까지 움직임을 연결하는 다양한 동작을 경험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어느 쪽이 ‘틀렸다’를 찾는 것이 아니다.

오른쪽과 왼쪽 중 어느 쪽이 더 편한지, 어느 쪽에서는 균형이 쉽게 흔들리는지, 어떤 방향에서는 움직임이 자연스럽고 어떤 방향에서는 유독 힘이 들어가는지를 스스로 느껴보는 것이다.

몸을 잘 움직인다는 것은 단순히 근력이 강하거나 유연하다는 뜻만은 아니다. 내가 지금 어디에 체중을 싣고 있는지, 어떤 방향을 자주 사용하는지 알아차리고 필요할 때 다른 움직임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도 포함된다.

오늘 집에 돌아가면 현관에 있는 가장 오래된 신발을 한번 뒤집어보자.

양쪽 밑창은 비슷하게 닳아 있는가.

아니면 유독 한쪽에만 당신의 걸음이 더 많이 남아 있는가.

신발 밑창 하나만으로 내 몸의 상태를 판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어쩌면 그 작은 마모의 흔적은 우리가 미처 느끼지 못했던 몸의 습관을 가장 조용하게 기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박동식 기자 dspark@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