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 낫는 물이라고?”
백록담 물 몰래 마시는 사람들
제주도, 결국 AI 드론 띄웠다
제주도는 지난 19일 한라산국립공원의 야간·새벽 불법행위를 단속하기 위해 인공지능(AI) 드론을 투입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관리 인력이 정기·특별·야간 순찰에 나섰지만 한라산의 넓은 면적과 험한 지형 탓에 모든 지역을 살피는 데 한계가 있었다. 특히 사람이 드문 야간이나 새벽에 비탐방로로 들어가거나 불법 야영을 하는 행위는 현장에서 발견하기 쉽지 않았다.
이에 등장한 것이 고해상도 열화상 카메라를 장착한 드론이다. 캄캄한 산속에서도 사람의 열원을 포착해 지상에서 확인하기 어려운 지역까지 살핀다. 제주도는 지난 13일 밤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어리목 일원에서 시범 단속을 벌여 불법행위가 자주 발생하는 지점을 분석하고 비행 경로도 점검했다.
단속 대상도 다양하다. 탐방예약을 하지 않고 산에 들어가는 행위부터 정해진 탐방시간을 어기는 행위, 비지정 탐방로 출입, 불법 야영·비박, 음주·흡연·취사, 쓰레기 투기, 임산물과 희귀식물 채취 등이 포함된다.
실제 한라산 비탐방로 무단출입 적발은 2023년 30건에서 지난해 53건으로 77% 증가했다. 최근 5년간 전체 불법행위 역시 2023년 59건까지 줄었다가 2024년 78건, 2025년 99건으로 다시 증가했다. 올해도 7월까지 43건이 적발됐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백록담 물을 직접 떠 마시는 탐방객이다.
최근 제주도의회에서 공개된 사진에는 지난해 6월께 한 탐방객이 정상 전망 구역을 벗어나 백록담 내부로 내려간 뒤 물을 떠 마시는 모습이 담겼다. 백록담은 바라보는 것은 가능하지만 분화구 내부로 내려가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물 자체가 ‘마시면 불법인 물’이라기보다 물을 뜨기 위해 출입금지 구역에 들어가는 행동이 문제가 되는 셈이다.
그런데 백록담에는 공교롭게도 ‘물을 마시면 병이 낫는다’는 옛이야기가 전해진다.
백록담은 한자로 ‘흰 백(白)’, ‘사슴 록(鹿)’, ‘못 담(潭)’을 쓴다. ‘흰 사슴이 노니는 연못’이라는 의미다. 전해지는 이야기 가운데는 병든 어머니를 위해 한라산에 오른 사냥꾼의 전설도 있다.
사냥꾼은 사슴의 피가 병에 좋다는 말을 듣고 한라산에서 흰 사슴을 발견했지만 백발노인이 나타나 사슴을 데리고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연못이 남았다. 사냥꾼이 연못의 물을 떠다 어머니에게 먹이자 병이 나았고 이후 이곳을 백록담이라 불렀다는 이야기다.
물론 백록담 물에 특별한 치료 효과가 있다는 과학적 근거는 없다. 현재 백록담에 몰래 들어가는 사람들의 목적이 이런 전설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희소한 경험을 해보려는 호기심이나 인증 욕구 등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이유가 무엇이든 출입금지 구역 진입은 허용되지 않는다.
옛이야기 속에서는 ‘신비의 물’이지만 지금은 한 모금 마시겠다고 백록담 안으로 내려갔다가 단속 대상이 될 수 있다.
백록담은 한라산 정상에 형성된 화구호다. 남북 약 400m, 동서 약 600m 규모의 타원형 분화구로 둘레는 약 1.7㎞에 달한다. 겨울에 내린 눈이 여름까지 남아 있는 ‘녹담만설’은 제주를 대표하는 절경으로 꼽혀왔다.
사진에서 흔히 접하는 ‘물이 가득 찬 백록담’은 실제로는 쉽게 만나기 어렵다. 강수량과 날씨에 따라 수량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비가 적은 시기에는 바닥이 상당 부분 드러나기도 하지만 장마나 집중호우 뒤에는 물이 크게 늘어나 전혀 다른 풍경을 만든다.
날씨도 변수다. 한라산 정상은 구름과 안개가 빠르게 몰려드는 곳이라 몇 시간을 걸어 올라가고도 백록담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반대로 날씨가 맑고 시야가 트이는 날에는 거대한 분화구와 제주 풍경이 한눈에 펼쳐진다.
최근에는 백록담 내부로 내려가는 것뿐만 아니라 출입금지 구역에서 밧줄을 고정해 이동하거나 바위 위에서 위험한 인증사진을 찍는 사례까지 확인됐다. ‘남들과 다른 사진 한 장’을 위해 탐방로를 벗어나는 행동이 자연 훼손은 물론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렇다면 합법적으로 백록담을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백록담 정상으로 이어지는 코스는 성판악과 관음사 탐방로다. 다만 2026년 8월 현재 관음사 탐방로의 삼각봉~백록담 정상 구간은 낙석방지시설 보수와 데크 교체 공사로 9월 30일까지 통제되고 있다. 현재 정상 탐방을 계획한다면 성판악 코스를 이용해야 한다.
성판악 탐방로는 편도 9.6㎞로 정상까지 약 4시간 30분이 걸린다. 왕복으로 계산하면 19㎞가 넘고 약 9시간을 걸어야 하는 장거리 산행이다. 백록담 정상 탐방은 사전에 한라산 탐방예약시스템에서 예약해야 하며 정해진 입산·하산 시간도 지켜야 한다.
안전 문제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성판악·관음사 탐방로에서 발생한 응급환자는 522건으로, 이 가운데 483건이 오후 2~6시 하산 시간대에 집중됐다. 제주도는 불법행위 단속뿐만 아니라 이 시간대 사고를 신속하게 발견하기 위해서도 AI 드론을 적극 활용할 방침이다.
결국 백록담을 제대로 즐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단순하다. 예약하고, 정해진 시간에 올라가고, 지정된 탐방로 안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전설 속 사냥꾼처럼 백록담 물을 떠 마시는 특별한 경험을 꿈꿀 수는 있다. 하지만 2026년의 한라산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한밤중 아무도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금지구역에 들어가도 머리 위 열화상 카메라에는 사람의 모습이 고스란히 잡힐 수 있다. 백록담의 ‘신비의 물’을 노린 밤도깨비족에게 이제 한라산의 밤은 더 이상 깜깜하지 않다.
김은정 기자 kej@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