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팬 아빠’ 누구길래?
자폐 아들 20년 넘게 홀로 키운 전경철 작가 별세
전경철 작가에게는 중증 자폐성 장애가 있는 아들 제원 씨가 있다. 제원 씨는 성인이 됐지만 발달연령은 두 살 정도에 머물러 있다. 전 작가는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는 동화 속 인물 피터팬처럼 순수한 모습을 간직한 아들을 ‘피터팬’이라고 불렀고, 자신은 자연스럽게 ‘피터팬 아빠’가 됐다.
아내와 이혼한 뒤에는 20년 넘게 아들을 홀로 돌봤다. 말을 하지 못하고 일상생활에서 지속적인 도움이 필요한 아들을 직접 먹이고 씻기며 함께 살아왔다.
그의 삶이 널리 알려진 계기는 지난해 4월이었다. 전 작가는 갑작스럽게 간암 말기 진단을 받았고, 치료하지 않을 경우 남은 시간이 약 6개월이라는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당시 그가 가장 먼저 걱정한 건 자신의 죽음이 아니었다. ‘내가 없어진 뒤 제원이는 어디에서 살아야 하나’라는 문제였다.
전 작가는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 아들이 생활할 곳을 찾기 시작했다. 전국 장애인 거주시설과 복지기관 등 1000여곳의 문을 두드렸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최중증 자폐가 있고 말을 하지 못하는 성인 남성을 받아줄 수 있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렵게 입소했다가 다시 나오게 된 일도 있었다.
그는 이 과정을 콘텐츠 플랫폼 브런치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들과 함께 살아온 시간과 앞으로 남겨질 아들에 대한 걱정을 담은 개인적인 기록에 가까웠지만, 글이 알려지며 상황이 달라졌다.
MBC ‘실화탐사대’ 등을 통해 사연이 소개됐고 수천 건의 응원 댓글이 이어졌다. 약 8000만원의 후원금도 모였다. 브런치에 연재한 글은 에세이 ‘안녕, 피터팬’으로 정식 출간됐다.
시민들의 관심 속에서 결국 제원 씨가 생활할 수 있는 최중증 발달장애인 공동체도 찾게 됐다. 전 작가가 가장 두려워했던 ‘아들이 혼자 남는 상황’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전 작가는 의료진이 예상했던 시간보다 약 1년을 더 버텼다. 그는 생전 아들을 자신의 ‘목숨줄을 붙잡는 존재’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아들의 거처를 마련한 뒤에는 관심을 다른 중증 자폐인들에게 돌렸다. 부모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성인 중증 자폐인들이 24시간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새로운 목표가 됐다.
전 작가는 이를 ‘피터팬의 네버랜드’라고 불렀다. 지난달에는 ‘피터팬 자폐인 복지재단’ 설립 추진위원회도 출범했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책 인세와 후원금 등을 합친 재단 설립 자금도 마련됐고, 기업들에 직접 재단 설립 제안서를 보내며 지원을 요청했다.
그는 자신을 특별한 아버지로 바라보는 시선에도 선을 그었다. 성인이 된 중증 자폐 자녀와 함께 살아가는 부모라면 누구나 비슷한 걱정을 안고 있다며, 자신과 아들이 겪은 현실을 다른 가족들이 반복하지 않기를 바랐다.
전 작가는 최근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등 방송에도 출연했다. 시민들의 응원을 받은 뒤 그는 “세상 모든 사람이 나를 외면하는 줄 알았는데 선한 이웃이 많다는 걸 경험했다”는 취지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무엇보다 사람들의 마음을 울린 건 아들에게 남긴 말이었다.
그는 “아빠라는 존재는 깨끗하게 잊고 네 행복만을 위해 살라고 하고 싶다”면서도 완전히 잊히고 싶지는 않은 마음을 털어놨다. 언젠가 자신을 떠올렸을 때 “문득 그립기는 하다” 정도로 기억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또 ‘실화탐사대’에서는 아들에게 “다른 부모들은 길어도 2~3년을 넘기지 못한다는 아빠로서의 행복을 너는 20년 넘게 안겨줬다”며 “늘 고마웠고 지금도 고맙다”고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전경철 작가는 5일 오후 7시 56분 세상을 떠났다. 장례는 고인의 뜻에 따라 빈소 없이 치러진다.
그가 끝내 완성을 보지 못한 ‘피터팬 자폐인 복지재단’은 남은 추진위원들이 설립 논의를 이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피터팬 아빠’라는 이름은 한 아버지의 별명을 넘어, 부모가 세상을 떠난 뒤 홀로 남게 될 중증 발달장애인의 삶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질문을 남기게 됐다.
김은정 기자 kej@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