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길 사라진 섬에서 만나는 정유재란의 역사와 거대한 선사시대 고인돌 군락
자동차로 다리 하나만 건너면 닿는 이곳은 편리한 접근성 너머에 묵직한 역사를 품고 있다.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흔적부터 까마득한 선사 시대의 고인돌까지, 시간의 층위가 다른 유적들이 여행객을 맞이한다. 복잡한 계획 없이, 내비게이션 하나만으로 떠날 수 있는 역사 여행이 현실이 된 것이다.
뱃길 40분이 5분으로 단축된 배경
전라남도 완도군 고금도는 더 이상 뱃길에 의존하지 않는다. 2007년 장흥반도와 고금도를 잇는 고금대교가 개통되면서 섬의 지형도가 바뀌었다. 과거 배를 타고 40분 넘게 들어가야 했던 길은 이제 차량으로 5분이면 충분하다.
이 변화는 단순히 시간 단축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주말 아침, 복잡한 예매 과정 없이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만 입력하면 바로 출발할 수 있다. 궂은 날씨에 여객선 운항이 취소될까 걱정할 필요도, 마지막 배 시간을 맞추기 위해 서두를 이유도 사라졌다. 육지와의 심리적, 물리적 거리가 완전히 좁혀진 셈이다.
섬에서 이순신 장군의 흔적을 마주하다
다리를 건너 섬 안쪽으로 들어서면 역사의 한 페이지가 생생하게 펼쳐진다. 국가 지정 사적 제114호인 ‘완도 묘당도 이충무공 유적’이 그 중심에 있다. 이곳은 정유재란 시기인 1598년, 삼도수군통제영이 설치됐던 조선 수군의 핵심 기지였다.
특히 충무사 인근의 월송대는 깊은 울림을 준다. 노량해전에서 순국한 이순신 장군의 유해를 육지로 옮기기 전, 열흘 동안 임시로 안치했던 장소로 전해진다. 바다를 지키던 영웅의 마지막 길목이었던 셈이다. 이처럼 고금도는 단순한 섬이 아닌, 국난 극복의 역사가 서린 현장이다.
조선 시대를 넘어 선사 시대로 가는 길
고금도의 시간 여행은 조선 시대에만 머물지 않는다. 섬 곳곳에는 훨씬 더 먼 과거의 증거가 남아있다. 바로 ‘고금도 지석묘군’이다. 수천 년의 세월을 견디고 원형에 가깝게 보존된 고인돌들은 이 땅에 아주 오래전부터 인류의 삶이 이어져 왔음을 증명한다.
이순신 장군의 유적에서 불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마주하는 거대한 고인돌은 묘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한 공간 안에서 서로 다른 시대의 역사를 동시에 체험하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이 지석묘군은 섬의 역사적 깊이를 가늠하게 하는 중요한 단서다.
역사 탐방을 위한 정보도 간편하다. 묘당도 이충무공 유적은 연중무휴로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관람객을 맞는다. 고금도 지석묘군 역시 상시 개방되어 있다. 두 곳 모두 별도의 입장료가 없어 부담 없이 역사의 현장을 둘러볼 수 있다.
박서우 기자 swoo@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