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대 한정판에 담아낸 36년의 역사, 마지막은 찬란하게
‘독일 3사’를 공포에 떨게 한 신화의 시작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1989년 초대 LS가 등장했을 때 세계 자동차 시장은 충격에 빠졌다. 독일 브랜드가 독점하던 최고급 세단 시장에 일본차가 던진 출사표는 무모해 보였지만, 결과는 대반전이었다. 압도적인 정숙성과 믿을 수 없는 품질, 그러면서도 합리적인 가격을 앞세운 LS는 북미 시장을 장악하며 ‘렉서스’라는 브랜드를 단숨에 명품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 신화는 한국에서도 이어져, 한동안 ‘회장님 차’의 대명사로 군림했다.시간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왕좌를 내주다
영원할 것 같던 왕조에도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2017년 등장한 현행 5세대 모델부터 LS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며 힘을 잃었다. 더 치명적이었던 것은 강력한 경쟁자들의 등장이었다. 특히 한국의 제네시스 G90의 성장은 LS에게 뼈아픈 현실을 직시하게 했다. 올해 상반기 북미 시장 판매량에서 G90이 LS를 앞지르는, 과거에는 상상도 못 할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일본 프리미엄의 자존심’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마지막 선물, ‘헤리티지’에 담긴 의미
렉서스는 떠나는 왕에게 마지막 예복을 입혔다. 북미 시장에 250대 한정으로 출시되는 ‘LS 헤리티지 에디션’은 36년의 역사를 기리는 마지막 선물이다. 깊고 짙은 검은색 외장(나인티 누아)과 1990년대 초창기 모델에서 영감을 얻은 강렬한 붉은색 실내(리오하 레드)는 LS의 화려했던 시작과 쓸쓸한 끝을 동시에 상징하는 듯하다. 약 1억 4천만 원에 달하는 가격표는 이 차가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아이콘에 대한 헌정임을 말해준다.이석호 기자 shlee@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