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시장 2년 연속 역성장 ‘빨간불’… 친환경차 앞세워도 반등은 없었다
폭스바겐·르노는 저만치 앞서가고,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중국차… 결국 ‘낀 신세’ 전락
현대자동차와 기아가 유럽 시장에서 심상치 않은 경고등을 마주했다. 현지 브랜드와 무섭게 성장하는 중국 브랜드 사이에서 고전하는 ‘샌드위치’ 위기가 현실화하며 2년 연속 판매량 감소라는 초유의 사태에 직면했다. 시장 전체는 성장하는데 유독 한국 브랜드만 뒷걸음질 치고 있어 위기감은 더욱 고조되는 분위기다.
수치로 드러난 위기 신호
유럽자동차공업협회(ACEA)에 따르면, 현대차·기아는 지난 10월 유럽 시장에서 총 8만 1540대를 판매해 전년 같은 기간보다 1.4% 감소한 실적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유럽 전체 자동차 시장이 4.9% 성장한 것과 비교하면 매우 이례적인 결과다. 시장은 커지는데 점유율은 오히려 잃고 있다는 의미다.
현대차는 4만 1137대(0.8% 감소), 기아는 4만 403대(2.0% 감소)로 두 회사 모두 마이너스 성장을 피하지 못했다. 올해 1~10월 누적 판매량 역시 87만 9479대로 지난해보다 2.8% 줄었다. 이 추세가 연말까지 이어진다면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역성장이 확실시된다. 이는 단순한 경기 침체 영향이 아닌, 브랜드의 구조적 경쟁력에 문제가 생긴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주력 모델도 힘 못 쓰는 현실
실적 부진은 주력 모델과 친환경차 라인업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났다. 10월 기준 현대차는 투싼(9959대), 코나(6717대)가, 기아는 스포티지(1만1960대)와 최근 출시된 EV3(5463대)가 판매를 이끌었다. 특히 전동화 전환이 빠른 유럽 시장을 겨냥해 투싼 하이브리드·전기차(6535대), 코나 전기차(5275대), 기아 EV3·니로 등 친환경차 판매에 집중했지만, 전체적인 하락세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유럽 소비자들의 빠른 선호도 변화와 치열해진 경쟁 구도 속에서 현대차·기아의 친환경차 전략이 시장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야심 차게 내놓은 신차들이 기대만큼의 ‘게임 체인저’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전략적 공백이 드러났다는 평가다.
유럽과 중국 사이 낀 신세
현대차·기아의 유럽 내 입지는 위아래로 압박받는 전형적인 ‘샌드위치’ 형국이다. 시장 상위권에서는 폭스바겐그룹이 4.6%, 르노그룹이 7.3% 성장하며 격차를 더욱 벌리고 있다. 반면 현대차·기아의 합산 점유율은 7.5%로 전년 대비 0.5%포인트 하락했다.
더 큰 위협은 아래에서 치고 올라오는 중국 브랜드다. SAIC(상하이자동차)는 10월에만 판매량이 35.9% 급증했고, BYD는 무려 206.8%라는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올해 누적 판매량 역시 SAIC는 26.6%, BYD는 285%나 증가하며 한국 브랜드의 턱밑까지 추격했다. 결국 유럽 전통 브랜드의 견고함과 중국 브랜드의 가격 경쟁력 및 전기차 공세 사이에서 현대차·기아의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이후 처음으로 판매가 감소했던 지난해와는 상황이 다르다”며 “시장 성장기에 발생하는 역성장은 브랜드 경쟁력 약화의 신호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동화, 디자인, 편의사양 등 트렌드 변화가 극심한 유럽 시장에서 특단의 전략 수정이 없다면 추락은 가속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서혜지 기자 seog@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