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 FSD·GM 슈퍼크루즈, 한·미 FTA 업고 국내 상륙... 법적 사각지대 논란 확산
국산차는 까다로운 인증에 발목, 사고나면 책임은 전부 운전자 몫?
미국의 첨단 자율주행 기술이 별도의 국내 승인 절차 없이 한국 시장에 상륙하면서 거센 논란이 일고 있다. 테슬라의 ‘완전자율주행(FSD)’과 GM의 ‘슈퍼크루즈’가 대표적으로, 현행 법규의 사각지대를 파고들어 사실상 무인증으로 국내 도로를 달리게 된 셈이다.
논란의 핵심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있다. 협정상 미국 안전기준(FMVSS)을 통과한 차량은 연간 5만 대까지 국내 안전기준 적용을 면제받는다. 문제는 이 면제 대상에 레벨 2+ 수준의 고도화된 자율주행 보조 기능까지 포함된다는 점이다. 기술적으로는 국내에서 개발 중인 레벨 3 자율주행과 유사하지만, 법적으로는 ‘운전자 개입이 전제된 보조 기능’으로 분류돼 별도 인증 대상에서 제외된 것이다.
규제 피해 한국 들어온 미국산 자율주행
테슬라는 지난 23일 최신 하드웨어(HW4)가 탑재된 모델 S·X 차량에 FSD 기능을 무선 업데이트(OTA) 방식으로 배포하며 국내 서비스를 본격화했다. 앞서 서울 도심을 운전자 개입 없이 주행하는 듯한 영상을 공개하며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GM 역시 발 빠르게 움직였다. 100억 원 이상을 투자해 국내 도로 환경에 최적화된 고정밀 지도를 구축하고, 캐딜락의 플래그십 전기 SUV ‘에스컬레이드 IQ’에 슈퍼크루즈 기능을 탑재해 국내 시장에 선제적으로 투입했다.
두 기술 모두 차선 유지, 자동 조향, 속도 조절 등 사실상 운전의 대부분을 시스템이 수행하지만, ‘운전자의 전방주시 의무’가 있다는 단서 하나만으로 까다로운 인증 절차를 모두 피했다. 기술 수준이 아닌, 법적 정의의 허점을 이용해 시장에 진입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동일 기술에도 발 묶인 국산차
반면 국내 완성차 업계는 비슷한 수준의 기술을 확보하고도 상용화에 애를 먹고 있다. 현대차·기아는 제네시스 G90과 EV9에 레벨 3 수준의 ‘고속도로 자율주행(HDP)’을 적용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일정이 계속해서 미뤄지고 있다.
레벨 3 기술은 특정 조건에서 시스템이 모든 주행을 책임지기 때문에, 사고 발생 시 제조사가 일부 책임을 져야 한다. 이로 인해 인증 요건이 매우 까다롭고, 관련 법규와 보험 제도 마련도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FTA로 인해 미국 업체는 규제를 우회하는 반면, 국내 업체는 동일한 기술에도 훨씬 높은 규제 장벽에 부딪히는 구조적 역차별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고 나면 책임은 모두 운전자 몫
더 큰 문제는 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다. FSD나 슈퍼크루즈 같은 레벨 2+ 기술은 아무리 성능이 뛰어나도 법적으로는 ‘운전자 보조 시스템’에 불과하다. 시스템이 주행하는 동안 사고가 발생하면, 감독 의무를 소홀히 한 운전자가 모든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서혜지 기자 seog@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