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V는 볼보, 세단은 렉서스... 수입차 내구성의 재발견
오래가는 차의 대명사? 통계가 말해주는 진짜 ‘강철 체력’ 자동차
내구성 좋은 차를 찾는 소비자라면, 자동차 수명 통계와 폐차 데이터를 꼼꼼히 따져봐야 합니다. 단순히 브랜드 이미지만 믿고 샀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자동차 리서치 전문기관 컨슈머인사이트와 데이터 분석 기업 CL M&S가 내놓은 분석 결과가 자동차 마니아들 사이에서 화제입니다. 20만km를 넘게 달리고도 쌩쌩한 차들의 정체를 낱낱이 파헤쳐 봤습니다.SUV 전성시대, 튼튼함도 세단보다 한 수 위
도로 위를 지배하는 SUV가 맷집도 좋았습니다. 이번 조사는 2024년에 수명을 다하고 말소된 10년 이상 된 차량 47만여 대를 분석한 결과입니다. 여기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차종별 격차입니다.SUV 차량 중 20만km를 넘게 주행한 비율은 무려 63.7%에 달했습니다. 10대 중 6대 이상은 지구 다섯 바퀴 거리를 거뜬히 달렸다는 뜻입니다. 반면 세단은 46.2%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험한 길을 달리고 짐을 많이 싣는 SUV의 특성을 고려하면, 태생적으로 뼈대가 튼튼하게 설계된 덕분으로 풀이됩니다.
수입차의 압승, 그중에서도 ‘안전’과 ‘내구’의 아이콘
브랜드별 성적표를 들여다보면 수입차의 강세가 뚜렷합니다. 국산차보다 수리비가 비싸고 유지비가 많이 든다는 편견이 있지만, 한번 사면 뽕을 뽑을 때까지 타는 차들은 대부분 수입 브랜드였습니다.SUV 부문의 왕좌는 ‘안전의 대명사’ 볼보가 차지했습니다. 20만km 초과 주행 비율이 74.1%로 압도적 1위입니다. 그 뒤를 BMW(73.1%), 아우디(71.8%)가 바짝 추격했습니다.
현대·기아의 굴욕? 르노와 KGM의 반란
이번 데이터에서 가장 충격적이면서도 재미있는 포인트는 국산차 순위입니다. 우리가 흔히 도로에서 가장 많이 보는 현대차와 기아가 내구성 순위에서는 의외의 복병들에게 자리를 내줬습니다.더 놀라운 건 세단 부문입니다. KGM(구 쌍용차)이 55.5%의 비율로 벤츠, BMW, 현대차를 모두 제치고 전체 3위, 국산 1위를 기록했습니다. 당시 KGM의 세단 라인업은 ‘체어맨’이 유일했습니다. 벤츠의 엔진과 변속기를 가져와 만들었던 체어맨의 기계적 완성도가 10년이 지난 폐차장에서 비로소 재평가받은 셈입니다.
47만 대의 데이터가 주는 교훈
결국 비싼 차가 오래 간다는 속설이 어느 정도는 맞아떨어졌습니다. 고가의 프리미엄 수입차일수록 차체 강성이 뛰어나고 부품 내구도가 높기 때문에 장거리 주행에도 컨디션을 유지하기 유리합니다.하지만 르노와 KGM의 선전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많이 팔린 차가 반드시 가장 튼튼한 차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중고차를 고르거나 차를 10년 이상 오래 탈 계획이 있는 소비자라면, 단순히 판매량이 높은 브랜드보다는 실제 도로에서 검증된 ‘마라토너’ 같은 모델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화려한 옵션이나 디자인보다 중요한 건,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자동차의 심장과 뼈대입니다. 이번 통계는 화려한 마케팅 뒤에 숨겨진 자동차의 ‘민낯’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가 될 것입니다.
이석호 기자 shlee@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