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차 한 대에 7,300만원? 미국 자동차 시장의 현주소
한국 시장도 예외 아냐… 대형차 선호와 가격 상승의 악순환

현대 아이오닉9 / 사진=현대차


“이제 새 차를 사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입니다.” 바다 건너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터져 나오는 소비자들의 한숨 섞인 목소리다. 신차 평균 가격이 사상 처음으로 5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7,300만 원을 돌파하면서 ‘내 차 마련’의 꿈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미친 차값’을 두고 연일 논쟁이 뜨겁다. 공화당은 과도한 연비 규제를, 민주당은 관세를 문제 삼으며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지만, 그 사이 소비자들의 부담만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형국이다.

평균 7,300만원 시대의 개막

2024 LA 오토쇼에 참가한 현대 아이오닉9 / 사진=현대차


미국의 신차 평균 가격이 5만 달러를 넘어선 것은 통계 작성 이래 처음이다. 이는 불과 10여 년 전인 2010년과 비교하면 무려 61%나 급등한 수치다. 특히 GM, 포드와 같은 미국 대표 브랜드의 신차 평균 가격은 5만 4,380달러(약 7,970만 원)에 달해, 전체 업계 평균보다 13%나 더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가격 폭등이 단순히 규제나 관세 문제만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소비자들의 선호도 변화에 있다. 미국 시장에서 작고 저렴한 세단은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다.

거대한 차를 향한 욕망, 제조사가 부추겼다

북미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에서 생산되는 아이오닉9 / 사진=현대차


광활한 국토와 가족 중심의 여가 문화 속에서 픽업트럭과 대형 SUV는 이제 미국인들에게 필수품이자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자동차 제조사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소비자들이 큰 차를 원한다는 점을 십분 활용해 차량의 크기를 경쟁적으로 키우고, 이전에는 선택 사양이었던 첨단 기능들을 기본으로 탑재하기 시작했다.

“가족의 안전을 위해 사륜구동은 필수”와 같은 공포 마케팅도 한몫했다. 안전에 대한 두려움을 자극하며 고가의 옵션을 강제하는 전략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그 결과 자동차의 기능과 안전성은 향상됐지만,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실제로 미국에서 인기 있는 픽업트럭의 경우, 가장 기본 트림은 4천만 원대에서 시작하지만 조금 더 나은 엔진과 편의 기능을 추가하면 가격이 1억 원을 훌쩍 넘기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공급망 붕괴와 전기차 전환의 나비효과

여기에 코로나19 팬데믹이 기름을 부었다. 글로벌 공급망이 마비되면서 철강, 알루미늄 등 원자재 가격이 급등했고 인건비 부담도 커졌다. 제조사들은 ‘이왕 생산이 제한된 김에, 더 비싸게 팔자’는 전략으로 선회하며 수익성 확보에 집중했다. 최근 들어 프로모션이 재개됐지만, 과거와 같은 파격적인 할인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전기차로의 전환 역시 가격 상승을 부채질하는 주요 원인이다. 고가의 배터리와 첨단 장치를 탑재한 전기차는 동급 내연기관차보다 평균 8,000달러(약 1,170만 원)가량 비싸다. 보조금 혜택이 끝나기 전 전기차를 구매하려는 수요가 몰리면서 전체 신차 평균 가격을 끌어올리는 효과를 낳았다.

미국의 오늘, 한국의 내일 될까

이러한 미국의 상황은 현재 한국 시장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있다. 국내에서도 세단의 인기가 시들해지고 팰리세이드, 카니발, 쏘렌토와 같은 대형 SUV와 RV가 도로를 점령하고 있다. 전기차 보조금 정책 변화에 따라 시장이 출렁이는 모습 역시 판박이다.

결국 원가 상승과 공급망 불안 요인은 고스란히 소비자 가격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 미국발 차값 상승 쇼크가 머지않아 한국 시장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서혜지 기자 seog@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