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산 전기차 막으려던 EU, 역내 부품 조달 70% 의무화 추진
현대차·기아, 보조금 끊겨 가격 경쟁력 상실 위기

기아 EV2 / 사진=기아


현대자동차와 기아가 유럽 전기차 시장에서 누적 판매 100만 대 돌파를 눈앞에 두고 예상치 못한 암초를 만났다. 순항하던 국산 전기차 수출 전선에 경고등이 켜진 것이다. 유럽연합(EU)이 꺼내 든 강력한 규제 카드 때문이다.

이번 사태의 핵심은 EU의 보호무역주의 강화에 있다. 저렴한 가격을 앞세운 중국산 전기차의 공세에 맞서기 위한 조치가 애먼 한국 기업의 발목을 잡는 모양새다. EU가 꺼내든 규제안과 그 배경, 그리고 현대차·기아의 대응 전략은 무엇일까.

중국 막으려다 한국 잡는 EU

기아 EV2 GT-Line / 사진=기아


최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전기차 보조금 지급 요건을 대폭 강화하는 법안 초안을 마련했다. 핵심은 현지 부품 조달 비율을 70% 이상으로 의무화하는 것이다.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전기차는 사실상 보조금 혜택에서 제외된다.

이는 유럽 시장에서 무섭게 성장하는 중국 브랜드를 견제하기 위한 ‘2차 방어선’ 성격이 짙다. 2019년 0.5%에 불과했던 중국 전기차의 유럽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11월 기준 12.8%까지 치솟았다. EU가 최대 45%에 달하는 높은 관세를 부과했음에도 백약이 무효하자, 역내 생산을 강제하는 초강수를 둔 것이다. 문제는 이 규제가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생산해 유럽으로 수출하는 모든 브랜드를 겨냥한다는 점이다.

발등에 불 떨어진 현대차·기아

기아 EV2 / 사진=기아


이번 조치로 현대차·기아는 직격탄을 맞게 됐다. 주력 전기차 모델인 아이오닉 5·6, EV6·9 등 대부분이 국내 공장에서 생산돼 유럽으로 수출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특히 2조 원을 투입해 건설 중인 울산 EV 전용공장이 올해 가동을 앞둔 시점이라 타격은 더욱 크다.

소비자 입장에서 보조금은 전기차 구매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보조금을 받지 못하면 가격표가 수백만 원 이상 오르는 것과 같아 가격 경쟁력을 완전히 잃게 된다. 체코와 슬로바키아에 현지 공장이 있지만, 유럽 전체 판매 물량을 감당하기엔 생산 능력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부랴부랴 꺼내 든 ‘플랜B’

현대차와 기아는 긴급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우선 기아는 슬로바키아 공장에서 소형 전기차 EV2 생산을 검토 중이며, 현대차는 튀르키예 공장에서 신형 전기차 양산을 준비하고 있다.

튀르키예는 EU 회원국이 아니지만, 1996년 체결한 관세동맹에 따라 EU 국가로 무관세 수출이 가능하다는 이점이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임시방편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는 어렵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현지 생산량을 단기간에 끌어올리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 시장 상황도 좋지 않다. 전기차 세제 혜택 축소와 내연기관차 연비 규제 완화로 전기차 성장세가 꺾이며 지난해 대미 전기차 수출은 전년 대비 86% 넘게 급감했다. 국내에서는 중국산 전기차 점유율이 34%까지 오르는 등 안팎으로 어려운 상황에 부닥쳤다.

오종학 기자 fivejh@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