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레이 운전자가 도로에서 겪는 부당한 대우, 과연 차종이 운전자의 서열을 결정하는가.
포르쉐와 벤츠 앞에선 작아지는 현실, 성숙한 자동차 문화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국내 도로 위에는 보이지 않는 ‘서열’이 존재한다. 운전 실력이나 매너가 아닌, 자동차 엠블럼이 그 기준이 되기도 한다. 특히 경차 운전자들이 겪는 부당한 대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기아 레이와 포르쉐, 그리고 벤츠를 둘러싼 최근 사례들은 우리 사회의 씁쓸한 단면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 차들이 도로 위에서 마주한 전혀 다른 시선은 무엇 때문일까?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군 한 사건은 이러한 현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기아 레이 운전자 A씨가 차선을 변경하자, 뒤따르던 벤츠 컨버터블 운전자 B씨가 경적을 울리며 위협적으로 따라붙었다. B씨는 결국 횡단보도 앞에서 차를 세우고 A씨에게 다가갔지만, 막상 건장한 체격의 A씨를 마주하자 태도를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단순한 보복운전 사건을 넘어, 경차라는 이유만으로 상대를 얕보는 도로 위 편견을 그대로 드러냈다.
경차라서 얕봤다가 벌어진 일
기아 레이는 뛰어난 공간 활용성과 도심 주행 편의성으로 꾸준한 사랑을 받는 모델이다. 하지만 도로 위에서는 ‘작고 저렴한 차’라는 오해와 함께 무시당하기 일쑤다. 일부 운전자들은 경차를 상대로 칼치기를 하거나 방향지시등 없이 끼어드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현대차 캐스퍼나 기아 모닝 등 다른 경차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차량의 크기와 가격이 마치 운전자의 사회적 지위인 것처럼 여기는 왜곡된 인식이 도로 위에 팽배해 있다. 차가 작다고 운전자의 인격까지 작은 것이 아니며, 차값이 저렴하다고 해서 도로 위 권리까지 줄어드는 것은 결코 아니다.
같은 사람 다른 차, 달라진 도로 위 대우
이러한 차별적 시선은 웹툰 작가 주호민의 경험담을 통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과거 기아 레이를 운전할 때와 포르쉐 911로 차를 바꾼 후 주변 운전자들의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고 밝혔다. 레이를 몰 때는 좀처럼 양보를 받지 못했지만, 포르쉐를 운전하자 다들 알아서 길을 터주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는 것이다.
출고가만 10배 이상 차이 나는 두 차량. 운전자는 동일하지만, 단지 차가 바뀌었다는 이유만으로 도로 위 대접이 달라진 셈이다. 이는 자동차 자체의 성능이나 디자인 문제가 아닌, 차를 통해 사람을 판단하려는 우리 사회의 시선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음을 시사한다.
실용성과 편견 그 사이
방송인 서동주 역시 레이와 관련된 일화를 공개한 바 있다. VIP 행사장에 레이를 타고 갔다가, 즐비한 고급 세단들 사이에서 어울리지 않는다는 듯한 관계자의 시선을 느껴 민망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레이의 뛰어난 주차 편의성과 실용성을 장점으로 꼽으며 차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레이는 겉모습의 화려함보다 실용적 가치를 중시하는 운전자에게 더없이 좋은 선택지다. 2미터가 넘는 신장의 최홍만 선수가 레이에 탑승하는 모습이 화제가 된 것처럼, 작은 차체 속에 숨겨진 넓은 공간은 레이의 반전 매력이기도 하다. 경차는 부족한 차가 아니라 목적에 충실한 합리적인 이동 수단이다.
결국 모든 문제는 차가 아닌 사람에게서 비롯된다. 고가의 수입차를 탄다고 해서 운전자의 인격까지 고상해지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경차를 탄다고 해서 그 사람의 가치가 평가절하되어서도 안 된다. 도로 위에서 기억되는 것은 차의 엠블럼이 아닌, 운전자가 보여준 배려와 존중의 태도다. 어떤 차를 타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운전하느냐가 진정한 품격을 결정한다.
서혜지 기자 seog@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