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첨단 360도 감지 기능 자랑하더니…단순 구조물도 못 피한 속사정
월 판매량 9천 대 넘기며 인기인데, 운전자들 불안감 커지는 이유
중국 지리자동차그룹의 고급 전기차 브랜드 지커(Zeekr)가 기술적 신뢰도에 타격을 입었다. 최첨단 자율주행 기능을 탑재한 플러그인하이브리드 모델 ‘9X’가 주행 보조 기능 작동 중 전신주를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 핵심은 라이다 5개와 360도 감지 기능이 있었음에도 사고를 피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번 사고는 단순한 기기 결함을 넘어 자율주행 기술의 근본적인 한계와 운전자의 책임 범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특히 제조사가 내놓은 사고 원인에 대한 추정이 논란을 키우고 있다. 1억 원이 넘는 고가 차량에서 벌어진 이번 사고의 배경에는 센서와 제어 로직, 그리고 예상치 못한 변수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라이다 5개 믿었는데 결과는 전신주 충돌
사고가 난 지커 9X는 53만 9,000위안, 우리 돈으로 약 1억 2,000만 원에 달하는 고급 모델이다. 이 차량의 최대 강점은 차량 주변 환경을 360도로 감지하는 5개의 라이다 센서였다. 제조사는 이를 바탕으로 뛰어난 장애물 회피 능력을 홍보해왔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자율주행 기능 작동 중 차량은 도로 옆에 있던 단일 구조물인 전신주를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충돌했다. 이 사고로 차량 전면부가 크게 파손된 것으로 알려졌다. 수많은 센서가 명백한 장애물 하나를 놓쳤다는 사실에 소비자들의 실망감은 커졌다.
단순히 센서가 많다고 해서 안전이 완벽하게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명확해진 셈이다. 센서가 물체를 감지하는 것과 시스템이 이를 ‘위험’으로 판단하고 회피 경로를 설정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이번 사고는 센서 인식 실패인지, 제어 로직의 판단 오류인지에 대한 의문을 남겼다.
제조사가 내놓은 뜻밖의 사고 원인
논란이 커지자 제조사 측은 사고 원인에 대한 잠정적인 분석을 내놨다. 전신주의 ‘둥근 형태’가 문제였을 수 있다는 것이다. 라이다는 레이저 펄스를 쏘아 돌아오는 신호를 분석해 물체의 형태와 거리를 파악한다. 원형 구조물은 레이저를 여러 방향으로 흩어지게 만들어 센서로 돌아오는 신호가 약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신호가 약하면 시스템은 물체의 정확한 위치나 형태를 판단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제조사의 추정일 뿐, 공식적으로 확인된 사고 원인은 아니다. 또한, 이 하나의 사례로 라이다가 모든 원형 물체를 감지하지 못한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오히려 이번 사고는 자율주행 시스템이 도로 위 다양한 형태의 구조물을 어떤 조건까지 안정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지, 그 검증 범위를 더욱 넓혀야 한다는 과제를 제시했다. 기술의 불완전성을 인정한 셈이지만, 운전자 입장에선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해명이다.
월 9천 대 팔리는데…운전자 책임론 부상
지커 9X는 지난 5월 한 달간 중국에서만 9,058대가 팔릴 정도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판매량이 늘어날수록 동일한 자율주행 시스템을 탑재한 차량이 도로에 많아진다는 의미다. 단 한 번의 사고가 시장 전체에 미치는 파급력이 클 수밖에 없다.
이번 사고는 결국 기술의 한계를 명확히 보여준다. ‘360도 감지’라는 홍보 문구가 모든 것을 자동으로 피하는 ‘완전한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내 차의 주행 보조 기능을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지, 그 경계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하게 만든다.
결론적으로, 현재의 자율주행 기술은 운전자의 개입을 전제로 하는 ‘보조’ 장치다. 운전자는 기능이 작동하는 중에도 항상 전방을 주시하고 즉시 제어할 준비를 해야 한다. 첨단 기술에 대한 맹신이 어떤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이번 사고가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서혜지 기자 seog@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