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 세닉 E-Tech, 기아 EV5와 비교되자 드러난 치명적 단점
가격, 공간, 옵션 모두 밀렸다... 외면받는 ‘유럽 올해의 차’의 현실



‘유럽 올해의 차’라는 화려한 수식어도 한국 시장의 냉정한 평가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했다. 한때 중형 SUV 시장에서 저력을 보여줬던 르노코리아가 야심 차게 내놓은 순수 전기 SUV ‘세닉 E-Tech 100% 일렉트릭(이하 세닉)’이 처참한 판매 성적표를 받아들며 체면을 구겼다.

16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르노 세닉의 지난 11월 국내 판매량은 단 5대에 그쳤다. 10월 판매량인 22대와 비교해도 급격한 하락세다. 한정판 999대 출시라는 목표가 무색하게 8월부터 11월까지 누적 판매량은 125대에 불과하다. 같은 기간 2089대가 팔린 경쟁 모델 기아 EV5와 비교하면 사실상 존재감이 없는 수준이다.

유럽 1위의 화려한 스펙 그러나





세닉은 르노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 ‘AmpR 미디움’을 기반으로 개발된 모델로,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부족함이 없다. 1855kg의 비교적 가벼운 차체에 최고출력 160kW(218마력), 최대토크 300Nm의 강력한 전기 모터를 장착해 경쾌한 주행감을 제공한다.

배터리 역시 LG에너지솔루션의 87kWh 대용량 NCM 배터리를 탑재해 1회 충전으로 최대 460km를 주행할 수 있다. 여기에 프랑스 소방당국과 공동 개발한 ‘파이어맨 액세스’ 시스템과 충돌 시 배터리 화재 위험을 줄여주는 ‘파이로 스위치’ 기술 등 안전 사양까지 갖춰 상품성을 높였다. 국산차에서는 볼 수 없는 차별화된 기술력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결정적 패인은 가격과 상품성



세닉이 외면받는 가장 큰 이유는 경쟁 모델 대비 부족한 가격 경쟁력이다. 세닉의 시작 가격은 5159만원으로, 기아 EV5(4588만원)보다 500만원 이상 비싸다. 전기차 보조금이 축소되면서 실구매 가격에 민감해진 소비자들이 더 합리적인 가격의 국산 전기차로 눈을 돌린 것이다.



공간 활용성 역시 EV5의 압승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EV5는 전장 4610mm, 휠베이스 2750mm로 세닉(전장 4470mm)보다 한 체급 큰 차체를 자랑한다. 덕분에 실내 공간이 훨씬 여유롭다. 특히 EV5는 운전석 릴렉션 시트, 3존 독립 공조, 2열 슬라이딩 테이블 등 가족 단위 소비자를 겨냥한 편의 사양을 대거 탑재했다.

한국 시장에선 안 통하는 유럽 감성



반면 세닉은 유럽 감성의 디자인과 소재를 강조했지만, 정작 국내 소비자들이 필수적으로 여기는 옵션이 빠져있다. 1열 통풍 시트와 2열 열선 시트 같은 주요 편의 사양이 일부 트림에서는 아예 선택조차 불가능하다. 전동식 테일게이트와 같은 기본적인 기능의 부재 역시 상품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결국 ‘유럽 감성’이라는 포장만으로는 까다로운 한국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다는 사실만 증명한 셈이다. 르노코리아는 12월 한정 보조금 지원 프로모션을 통해 판매량 반등을 노리고 있지만, 이미 돌아선 소비자들의 마음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서혜지 기자 seog@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