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스타트업 ‘도넛랩’, CES서 양산형 전고체 배터리 기술 공개.
업계 회의론 속 국책 연구기관 통한 공개 검증으로 정면 돌파 예고.
2월의 끝자락, 전 세계 전기차 및 배터리 업계가 핀란드의 한 작은 스타트업을 주목하고 있다. ‘도넛랩(Donut Lab)’이 지난 CES에서 던진 ‘양산형 전고체 배터리 확보’라는 폭탄선언 때문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전기차 시장의 판도를 완전히 뒤바꿀 수 있는 ‘게임 체인저’의 등장을 의미한다.
하지만 업계의 반응은 뜨거운 기대와 차가운 의심이 교차한다. 도넛랩의 과감한 주장과 그를 둘러싼 회의론, 그리고 이들이 내놓은 정면 돌파 카드를 자세히 들여다본다. 과연 꿈의 배터리 시대는 정말 코앞까지 다가온 것일까?
CES 뒤흔든 핀란드 스타트업의 선언
핀란드의 스타트업 도넛랩은 최근 CES에서 자사가 양산 가능한 전고체 배터리 기술을 확보했다고 발표하며 업계에 파란을 일으켰다. 심지어 수개월 내로 버지(Verge) 전기 오토바이에 이 배터리를 탑재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전고체 배터리는 현재 주류인 리튬이온 배터리의 액체 전해질을 고체로 대체한 차세대 기술이다. 이론적으로 에너지 밀도를 획기적으로 높여 전기차의 주행거리를 크게 늘릴 수 있다. 또한 전해질이 불연성 고체이므로 화재나 폭발 위험이 없어 ‘궁극의 배터리’로 불린다.
기대와 의심 결국 공개 검증대로
하지만 삼성SDI, LG에너지솔루션 등 글로벌 배터리 대기업들도 2027년 이후 상용화를 목표로 개발 중인 기술을 무명의 스타트업이 먼저 완성했다는 주장에 업계는 즉각적인 신뢰를 보내지 않았다. 과거에도 ‘꿈의 기술’을 내세웠다가 사라진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기술의 실체에 대한 검증 요구가 빗발쳤다.
결국 논란이 커지자 도넛랩은 핀란드 국책 연구기관인 VTT 기술연구센터에 배터리 성능에 대한 독립적인 측정을 의뢰했다고 밝혔다. 몇 주에 걸쳐 시험 결과를 순차적으로 공개하고, 상세 보고서까지 제공하겠다는 계획이다. 도넛랩 측은 “혁신 기술에 의심이 따르는 것은 당연하다”며 외부 기관의 객관적인 데이터를 통해 기술력을 입증하겠다고 강조했다.
넘어야 할 거대한 기술의 벽
업계가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전고체 배터리가 상용화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기술적 장벽이 분명하다. 가장 큰 난관은 고체 전해질과 양극·음극 활물질 사이의 높은 계면 저항 문제다. 고체끼리 맞닿는 면에서 이온의 이동이 원활하지 않아 배터리 성능과 수명이 저하될 수 있다.
또한 충전 과정에서 리튬이 뾰족한 나뭇가지 모양의 결정으로 자라나 분리막을 훼손하는 ‘덴드라이트’ 현상도 완벽히 제어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실험실 수준의 성공을 넘어, 수율을 높여 균일한 품질로 저렴하게 대량 생산하는 공정 기술 확보가 상용화의 가장 큰 허들로 꼽힌다.
진정한 상용화의 열쇠는 이것
따라서 시장과 전문가들이 VTT의 검증 결과에서 주목하는 부분은 단순히 순간적인 최대 출력이나 에너지 밀도 수치가 아니다. 수백, 수천 회 이상의 충·방전을 반복했을 때의 수명(사이클 특성), 저온 및 고온 등 극한의 환경에서의 안정성, 그리고 생산된 셀마다 얼마나 균일한 품질을 보이는지가 관건이다.
도넛랩의 발표가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날지, 아니면 전기차 시대의 새로운 막을 여는 신호탄이 될지는 이번 공개 검증 결과에 달려있다. 전 세계의 이목이 핀란드의 한 연구소로 쏠리고 있다.
서혜지 기자 seog@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