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자국 생산 전기차에만 보조금 지급하는 ‘산업가속화법’ 발표

국내 생산으로 유럽 시장 공략해온 현대차·기아 그룹에 직접적인 타격 예상

니로 EV / 사진=kia


유럽 시장에서 연일 판매 기록을 경신하던 현대자동차그룹의 전기차 전략에 예기치 못한 암초가 등장했다. 유럽연합(EU)이 역내 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전기차 보조금 지급 조건을 대폭 강화하는 새로운 규제안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이번 조치는 유럽 현지 생산을 사실상 강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국내에서 생산해 수출하는 비중이 절대적인 현대차와 기아에게는 상당한 압박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번 규제는 크게 **보조금 지급 조건 변경**, **핵심 부품의 현지 조달 의무**, 그리고 **배터리 업계의 기회**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국내 자동차 산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과연 현대차그룹은 이 거대한 파고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보조금 문턱 높인 EU의 속내



EV6 / 사진=kia


EU 집행위원회가 발표한 ‘산업가속화법(IAA)’은 그 이름처럼 유럽 내 핵심 산업의 성장을 가속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특히 전기차 분야에서는 보조금을 받기 위한 조건을 매우 까다롭게 설정했다. 핵심은 차량의 최종 조립이 반드시 EU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배터리를 제외한 주요 부품의 70% 이상을 유럽산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조항까지 포함됐다. 이는 사실상 생산 기지 전체를 유럽으로 옮기지 않으면 보조금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의미다. EU는 이 정책을 통해 현재 14% 수준인 제조업의 역내총생산(GDP) 비중을 2035년까지 20%로 끌어올리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세웠다.

수출 80% 의존, 발등에 불 떨어진 현대차·기아



이번 조치가 현대차와 기아에게 유독 뼈아픈 이유는 현재의 판매 구조 때문이다. 지난해 유럽에서 판매된 현대차그룹의 전기차(아이오닉 5, EV6, 니로 EV 등) 중 80% 이상이 울산, 광명 등 국내 공장에서 생산돼 수출된 물량이다.

만약 산업가속화법이 원안대로 시행되면, 이들 차량을 구매하는 유럽 소비자들은 수백만 원에 달하는 보조금을 받지 못하게 된다. 이는 고스란히 차량의 실구매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폭스바겐, 르노 등 현지 생산 체제를 갖춘 경쟁사들에 비해 가격 경쟁력에서 치명적인 약점을 안게 된다. 현대차그룹은 EU 규정이 실제 판매에 미칠 영향을 면밀히 분석하며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누군가에겐 위기, 다른 이에겐 기회



물론 이 규제가 국내 모든 관련 산업에 악재인 것은 아니다. 완성차 업계의 시름이 깊어지는 반면, 일찌감치 유럽에 생산 거점을 마련한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EU의 현지 생산 요건 강화는 곧 유럽 내에서 생산된 배터리의 중요성이 커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폴란드, 헝가리 등에서 이미 안정적으로 배터리 셀을 양산 중인 이들 기업은 유럽 완성차 업체들의 새로운 공급 파트너로 더욱 주목받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이번 규제는 한국 자동차 및 배터리 산업의 희비를 가르는 분수령이 될 수도 있다.

완성차 업계는 유럽 현지 생산 공장 신설, 현지 업체와의 협력을 통한 위탁 생산 등 다양한 대응 방안을 검토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향후 EU의 최종 입법 과정과 협상 결과가 현대차그룹의 유럽 전략에 결정적인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오종학 기자 fivejh@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