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전환 과정에서 27조 원대 손실을 본 스텔란티스. 결국 중국 리프모터와 손잡고 유럽 현지 생산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고율 관세를 피하고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생존 전략의 시작이다.



유럽 자동차 시장의 전동화 전환이 예상 밖의 난관에 부딪혔다. 전기차 수요 둔화와 수익성 악화라는 이중고 속에서, 한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가 결국 백기를 들고 예상치 못한 파트너와 손을 잡았다. 수십조 원에 달하는 막대한 손실을 감수한 끝에 내린 이들의 결정은 과연 무엇일까.

푸조, 지프, 크라이슬러 등 14개 브랜드를 거느린 거대 자동차 그룹 스텔란티스의 이야기다. 이들은 공격적인 전동화 전략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약 200억 달러, 우리 돈으로 27조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손실을 기록했다. 부담이 커지자 결국 전략 수정에 나섰다. 북미에서는 전기 픽업트럭 프로젝트를 중단하고 일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까지 단종하는 등 사실상의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생존 위해 중국과 손잡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스텔란티스가 꺼내 든 카드는 바로 ‘협력’이다. 파트너는 놀랍게도 중국의 전기차 업체 ‘리프모터(Leapmotor)’다. 스텔란티스는 이미 지난해 약 15억 유로를 투자해 리프모터의 지분을 확보하고 합작 법인까지 설립했다. 그리고 이제는 유럽 현지에서 리프모터의 전기차를 직접 생산하는 단계까지 나아간다.

이는 자체 기술로 전기차 라인업을 개발하고 생산하는 데 드는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줄이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분석된다. 빠르게 성장하는 중국 전기차 기술력을 빌려 위기를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도다.

관세 장벽 넘는 첫 결과물 B10



양사의 협력으로 탄생할 첫 번째 모델은 소형 전기 SUV ‘리프모터 B10’이다. 2026년 하반기부터 스페인 사라고사에 위치한 스텔란티스 공장에서 생산에 돌입할 예정이다. B10은 약 4.5m급 차체에 후륜구동 싱글 모터를 탑재해 최고출력 218마력을 발휘한다. 1회 충전 시 WLTP 기준 최대 430km를 주행할 수 있어 실용성을 갖췄다.

가장 핵심적인 전략은 ‘유럽 현지 생산’이다. 최근 유럽연합(EU)이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를 검토하는 상황에서, 현지 생산을 통해 관세 장벽을 피하고 가격 경쟁력을 극대화하겠다는 계산이 깔려있다. 중국의 기술력과 스텔란티스의 생산 기반이 결합된 영리한 수다.



자동차 산업 지각변동의 신호탄



스텔란티스의 이번 결정은 단순히 신차 하나를 출시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회사는 B10을 시작으로 최소 3종 이상의 리프모터 기반 전기차를 유럽에서 추가 생산할 계획이다. 부품 역시 현지에서 조달하는 체계를 구축해 완성도를 높일 방침이다.

업계는 이를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는 명백한 신호로 해석한다. 과거 유럽과 미국 제조사들이 기술을 주도하던 시대는 저물고, 이제는 중국 업체들의 전기차 기술력과 생산성이 세계 시장의 판도를 흔드는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생존을 위한 스텔란티스의 현실적인 선택이 전동화 시대를 맞이한 다른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쏠린다.



서혜지 기자 seog@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