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BMW, 벤츠마저 제쳤던 ‘1만대 클럽’ 신화의 주인공.
환율 폭등과 전동화 지연, 삼중고 끝에 결국 자동차 사업 철수를 결정하다.
한때 ‘국민 수입차’로 불리며 국내 시장을 호령했던 혼다가 결국 백기를 들었다. 혼다코리아는 연말을 끝으로 자동차 사업을 완전히 종료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환율’ 문제지만, 업계에서는 가파른 시장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다고 분석한다. 1만 대 판매 신화에서 쓸쓸한 퇴장까지, 혼다가 한국을 떠나는 진짜 배경에는 무엇이 있을까.
BMW도 제쳤던 영광의 시절
혼다의 전성기는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연간 1만 2,356대를 판매하며 수입차 브랜드 최초로 ‘1만 대 클럽’에 가입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는 BMW나 메르세데스-벤츠보다도 앞선 대기록이었다.
이러한 돌풍의 중심에는 ‘가성비’ 전략이 있었다. 주력 모델인 어코드를 3,000만 원대 초반에 내놓으며 국산 준대형 세단과 직접 경쟁했다. 여기에 잔고장 없는 일본차 특유의 내구성과 뛰어난 연비가 더해지며 ‘합리적인 수입차’라는 인식을 확고히 굳혔다. 실용성을 앞세운 CR-V 역시 성공 가도에 힘을 보탰다.
가성비 잃자 돌아선 소비자
하지만 영광은 길지 않았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격을 대폭 인상하면서 혼다의 가장 큰 무기였던 ‘가성비’ 매력은 희석됐다. 소비자들은 서서히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2017년 잠시 1만 대 판매를 회복하기도 했지만, 이후의 하락세는 더욱 가팔랐다.
결국 지난해 판매량은 1,951대로 20년 전 수준으로 회귀했으며, 올해 1분기 판매량은 211대에 그치며 시장에서 존재감을 완전히 잃었다. 한때 국산차의 대안으로 꼽혔던 위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것이다.
환율은 핑계 전동화 실패가 결정타
혼다코리아 측은 사업 철수의 핵심 원인으로 ‘환율’을 지목했다. 미국 공장에서 생산된 차량을 100% 들여오다 보니, 1,300원대를 훌쩍 넘는 고환율 상황에서 가격 경쟁력을 도저히 유지할 수 없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전동화 전환의 실패에 있다. 국내 자동차 시장이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는 동안 혼다는 이렇다 할 친환경차 라인업을 선보이지 못했다. 경쟁력 있는 신차가 부재한 상황에서 환율이라는 외부 악재는 혼다의 입지를 더욱 좁히는 결정타로 작용했다.
남은 차주들 중고차 가격은 어쩌나
혼다코리아는 자동차 사업 종료 후에도 8년간 애프터서비스를 제공하고 전국 서비스망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기존 고객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브랜드 철수로 인한 중고차 가격 하락 등 자산 가치 손실에 대한 보상 계획은 전무한 상태다. 이로 인한 기존 차주들의 불안감과 불만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혼다의 퇴장은 급변하는 국내 수입차 시장의 단면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오종학 기자 fivejh@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