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인정받은 현대차 캐스퍼 일렉트릭, 정작 안방에선 기나긴 출고 대기에 중고차 가격까지 역전되는 기현상 발생.
현대차의 소형 전기 SUV 캐스퍼 일렉트릭이 국내 소비자들에게 ‘그림의 떡’이 되고 있다. 뛰어난 상품성으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지만, 정작 국내에서는 차량을 인도받기까지 기약 없는 기다림이 이어지고 있다. 이 기나긴 대기의 배경에는 해외 시장에서의 폭발적인 반응과 그에 따른 생산 배정 문제, 그리고 수익성을 우선하는 제조사의 전략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다. 지금 계약해도 2028년에나 차를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는 과연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생산량 90%는 해외로… 내수 시장은 뒷전
캐스퍼 일렉트릭의 국내 출고 지연은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된다. 현대차는 올해 생산 목표량의 90%를 해외 수출 물량으로 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수요 예측을 훌쩍 뛰어넘는 해외 주문이 쇄도하면서, 생산 라인이 수출 물량을 소화하는 데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럽 시장에서는 ‘인스터(INSTER)’라는 이름으로 출시 6개월 만에 1만 대 판매를 돌파했고, 이는 같은 기간 국내 판매량보다 265%나 높은 수치다. 일본 시장에서도 인기가 뜨겁다. 이러한 해외 흥행이 국내 소비자에게는 기나긴 대기 시간으로 돌아온 셈이다. 생산을 맡은 광주글로벌모터스(GGM)의 제한적인 생산 능력 또한 공급 부족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비싼 트림은 10개월? 노골적인 차별 논란
문제는 동일 차종 내에서도 트림에 따라 출고 대기 기간이 극명하게 갈린다는 점이다. 2026년 4월 기준, 일반 트림인 프리미엄과 인스퍼레이션은 약 23개월, 크로스 트림은 25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일부 옵션을 추가하면 대기 기간은 최대 30개월까지 늘어난다.
하지만 최근 출시된 최상위 트림 ‘라운지’는 약 10개월이면 출고가 가능하다. 기본 모델보다 670만 원 비싼 라운지 트림은 수익성이 높아 제조사가 우선 생산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수출 계획 없이 내수 시장에만 집중하는 모델이라는 점도 빠른 출고의 원인으로 꼽힌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돈을 더 내면 먼저 차를 받을 수 있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며 형평성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신차보다 비싼 중고차, 기이한 가격 역전
신차 출고가 하염없이 늦어지자 중고차 시장에서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즉시 출고가 가능한 캐스퍼 일렉트릭 중고차에 수백만 원의 웃돈(프리미엄)이 붙어 거래되는 것이다. 서울시 기준 보조금을 적용한 실구매가가 약 2,184만 원 수준임에도, 중고차 가격이 이를 넘어서는 가격 역전 현상이 나타났다.
2년이 넘는 시간을 기다리느니, 차라리 돈을 더 주고서라도 바로 차를 이용하려는 소비자들이 중고차 시장으로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공급만 원활하다면 더 많이 팔릴 수 있는 차인데, 사실상 물량이 없어 못 파는 상황”이라고 현재 시장 분위기를 전했다.
‘2025 월드카 어워즈’ 수상 등 세계적인 찬사에도 불구하고 캐스퍼 일렉트릭의 성공은 국내 소비자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주고 있다. 현대차가 생산 목표를 상향 조정한다고 밝혔지만, 수출 중심의 생산 배정 기조가 바뀌지 않는 한 국내 소비자들의 기나긴 기다림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서혜지 기자 seog@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