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수요 둔화의 틈을 파고든 하이브리드·SUV 전략, 미국 시장에서 제대로 통했다.
경쟁사들 판매량 감소 속 홀로 성장... 토요타 이어 하이브리드 누적 판매 세계 2위 기록
2026년 미국 자동차 시장의 흐름이 심상치 않다. 전기차 열풍이 한풀 꺾인 자리를 한국산 자동차들이 빠르게 채우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가 하이브리드와 SUV라는 두 개의 강력한 무기를 앞세워 역대 1분기 최대 판매 실적을 기록한 것이다. 특히 일본 경쟁사들이 부진을 면치 못하는 상황에서 거둔 성과라 더욱 의미가 깊다. 과연 이들의 독주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예상 뛰어넘은 하이브리드의 폭발력
현대차·기아 성장의 일등 공신은 단연 하이브리드 모델이다. 올해 1분기 두 회사의 하이브리드 판매량은 9만 7,627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53.2%나 급증했다. 대표적으로 싼타페 하이브리드는 47%, 아반떼(현지명 엘란트라) 하이브리드는 141%라는 경이적인 판매 증가율을 보였다.
이는 미국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축소 정책과 맞물려 나타난 현상이다. 높은 가격과 충전 인프라 부족으로 전기차 구매를 망설이던 소비자들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연비 좋고 친숙한 하이브리드로 눈을 돌린 결과다. 현대차와 기아는 이러한 시장의 흐름을 정확히 읽고 다양한 하이브리드 라인업을 준비한 것이 주효했다.
시장을 지배하는 SUV 라인업
하이브리드의 성공 뒤에는 굳건한 SUV 라인업이 버티고 있었다. 미국 소비자들의 SUV 선호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현대차와 기아는 매력적인 디자인과 상품성을 갖춘 모델로 시장을 공략했다. 현대차에서는 투싼이 5만 5,426대로 가장 많이 팔렸고, 신형 싼타페와 팰리세이드가 그 뒤를 이으며 판매를 견인했다.
기아 역시 스포티지가 4만 4,704대 팔리며 브랜드 내 판매 1위를 기록했다. 넓은 실내 공간과 다양한 편의사양을 갖춘 이들 SUV 모델에 고효율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더해지면서 시너지를 낸 것이다.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 역시 1분기에 1만 8,317대를 판매하며 전년 대비 4.6% 성장, 탄탄한 브랜드 파워를 입증했다.
경쟁사 부진 속 나홀로 성장
현대차·기아의 성과는 경쟁사들의 실적과 비교하면 더욱 돋보인다. 전통의 강자 토요타는 1분기 판매량이 0.1% 감소하며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했고, 혼다(-4.2%), 스바루(-15%), 마쓰다(-14.4%) 등 다른 일본 브랜드들은 모두 역성장을 기록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대차·기아만이 2.6%의 성장을 이뤄내며 점유율을 확대했다. 이는 단순히 운이 좋았던 것이 아니다. 발 빠르게 하이브리드 경쟁력을 강화한 덕분에, 글로벌 하이브리드 누적 판매량에서 토요타에 이어 세계 2위라는 금자탑을 쌓아 올린 것이 미국 시장에서의 성공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전기차 부진에도 흔들림 없는 이유
물론 과제도 있다. 1분기 전기차 판매는 1만 8,086대로 전년 대비 21.6% 줄었다. 하지만 하이브리드 판매량의 폭발적인 증가가 전기차의 부진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았다. 이는 특정 동력원에만 의존하지 않는 유연한 제품 포트폴리오 전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업계에서는 현대차와 기아의 하이브리드 중심 전략이 당분간 유효할 것으로 보고 있다. 관세 정책 등 외부 변수가 존재하지만, 이미 확보한 상품 경쟁력과 브랜드 인지도를 바탕으로 올해 남은 기간에도 미국 시장에서의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서혜지 기자 seog@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