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능·사양은 플래그십, 하지만 엠블럼이 주는 만족감은 달랐다

‘양카’ 이미지 K5와 같은 로고… 고급 세단 소비자들이 망설인 배경

K9 / 위키미디어


기아 K9은 플래그십 세단다운 상품성을 갖췄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준수한 주행 능력과 고급스러운 내외관 디자인은 호평을 받았지만, 판매 실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실패 원인을 단순히 ‘차가 부족했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다.

문제는 성능과 사양만으로 팔리는 시장이 아니라는 데 있었다. K9의 실패 뒤에는 상품성만으로는 넘을 수 없었던 ‘브랜드 이미지’라는 거대한 벽이 존재했다. 당시 소비자들이 기아라는 브랜드에 기대하던 가치와 K9이 지향하던 가치 사이에 상당한 간격이 있었다.

차는 좋았지만 엠블럼이 발목을 잡았다



K9 / 기아


고급 세단 구매자는 단순 이동 수단을 넘어, 브랜드가 주는 사회적 이미지와 만족감까지 함께 소비한다. 하지만 K9이 출시될 당시 기아는 대중차 브랜드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일부 소비자는 브랜드를 가볍게 보는 시선도 보냈다. 이런 상황에서 G90과 경쟁하는 가격표를 선뜻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다.

특히 차체 디자인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았던 당시의 기아 엠블럼도 문제였다. 고급스러운 외관을 보고 만족하다가도, 전후면에 붙은 익숙한 로고를 보는 순간 대중차의 이미지가 떠오른다는 반응이 많았다. 1억 원에 가까운 비용을 지불하는 소비자 입장에서 이는 구매를 망설이게 하는 결정적 요인이 될 수 있었다.

K5 ‘양카’ 이미지가 K9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K9 실내 / 기아


같은 시기 K5를 둘러싼 부정적 이미지도 K9에는 악재였다. 일부 K5 차량의 과격한 튜닝이나 난폭 운전 사례가 온라인상에서 ‘양카’라는 밈으로 번지면서 브랜드 전체 이미지에 영향을 미쳤다. 물론 이는 일부의 사례일 뿐이지만, 브랜드에 대한 인식을 형성하는 데는 무시할 수 없는 요소로 작용했다.

플래그십 세단 소비자는 품격과 사회적 시선에 민감하다. 이들에게 K9과 K5가 같은 기아 로고를 공유한다는 사실은 상당한 부담이었다. 기아가 가진 대중차 이미지와 K9이 추구하는 럭셔리 이미지의 충돌이 발생한 셈이다. 이 간극을 좁히지 못한 것이 K9 실패의 핵심으로 꼽힌다.

결론적으로 K9은 제품 자체의 완성도보다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 인식을 바꾸는 일이 훨씬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차가 좋아지는 속도보다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는 속도가 더 느리다는 점을 명확히 드러냈다. 고급차를 구매할 때 내가 지불하는 비용이 차 자체에 대한 것인지, 브랜드 가치까지 포함된 것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모델로 남았다.

K9 / 기아


K9 / 기아


K9 실내 / 기아


오종학 기자 fivejh@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