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예능의 ‘웃음 코드’, 왜 지금은 불가능해졌나

사진 = 유튜브 ‘뜬뜬’ 화면 캡처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예능 기준 역시 뒤바뀐 시대

세월의 흐름은 예능 판도도 바꾸었다. 최근 방송된 ‘핑계고’에서 이효리와 유재석은 달라진 방송 환경을 언급하며 그 변화를 실감했다고 털어놓았다.

유재석이 “세상이 십몇 년 사이에 정말 많이 달라졌다”고 운을 떼자, 이효리는 “나는 그 달라진 사이에 방송을 쉬었잖아요. 그래서 요즘은 방송이 너무 긴장돼요”라고 웃어 보였다. 과거엔 자연스럽게 넘겼던 장면들조차 지금은 문제 소지가 될 수 있다는 압박감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그땐 여자 가슴 얘기도 농담했어”…달라진 감수성

이효리는 “예전엔 여자 가슴이 작은 걸로도 놀리던 시절이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당시엔 출연자 간 신체나 외모를 소재로 한 ‘가벼운 농담’이 예능의 일부처럼 여겨졌다.

양세찬 역시 “코미디에서도 그런 드립이 많았다”며 변화에 공감했다.

이효리는 이어 “여자가 내 옆에 앉으려고 하면 ‘아이, 누구 앉혀주세요’라고 자연스럽게 말하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절대 하면 안 되는 말이잖아요”라고 말했다.

‘패떴’ 합숙, ‘천생연분’ 게임…지금이면 회의 단계에서도 탈락

사진 = 유튜브 ‘SBS 패밀리가 떴다’, ‘MBCentertainment’ 화면 캡처
2000년대 예능 포맷을 떠올리면 지금 기준으로는 상상조차 힘든 장면들이 많다.

이효리는 “패밀리가 떴다 때는 남녀 합숙을 했고, 한 방에서 모두가 함께 잤다”며 “심지어 여자 옆에 잘 사람을 투표로 뽑았다”고 회상했다.

이에 유재석은 “와… 지금 다시 들으니까 닭살 돋네”라며 놀라워했고, 양세찬은 “지금이면 회의 안건에 올리기도 어려운 아이템”이라고 단언했다.

왜 그 시절엔 가능했을까…“시대의 감수성이 달랐다”

그때 가능했고 지금 불가능한 이유는 간단하다. 당시엔 출연자의 권리, 인권, 젠더 감수성, 사적 경계에 대한 인식이 지금보다 낮았기 때문이다.

남녀 간 거리 좁히기나 과한 미션도 “예능이니까”라는 말로 쉽게 소비됐다. 출연자가 불편했을 법한 장면도 ‘웃음을 위한 진행’이라는 명목 아래 당연시되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시청자들의 감수성이 급격히 높아졌고, ‘동의’와 ‘존중’은 필수 요소가 되었다. 작은 장면 하나도 논란으로 번질 수 있고, 방송사는 사전 점검을 이전보다 훨씬 강화하고 있다.

2000년대 예능의 ‘레전드 장면’, 지금 보면 논란감

당시 예능을 상징하는 스킨십 유도 게임들은 지금 기준으로는 불가능한 연출이다.

‘종이 조각을 입으로 옮기기’, ‘백허그 미션’, ‘풍선 터뜨리기’ 등은 남녀 간 밀착을 통한 설렘 코드를 활용한 대표적인 장치였다.

그 시절엔 예능의 긴장감과 재미 요소로 소비됐지만, 지금 시각에서 보면 출연자 동의와 경계 존중이 결여된 장면들이 많다. 시청자들이 “왜 저랬지?” 하고 의문을 갖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웃음의 방식도 변했다…‘센 미션’에서 ‘관찰·공감’으로

예능이 변화한 것은 사회 분위기와 밀접하다. 프라이버시, 동의, 젠더 이슈, 출연자 안전 등 시청자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달라졌고, 예능 역시 흐름을 따라 변화했다.

과거엔 ‘밀어붙이는 미션’과 ‘자극적 상황’이 웃음을 만들었다면, 지금은 관찰 예능·일상 공유·대화 중심의 공감 예능이 대세를 이룬다.

시대가 바뀌니 웃음의 조건도 바뀐 것이다.

과거를 비난할 필요는 없다…단지 ‘우리가 얼마나 변했는지’ 보여줄 뿐

2000년대 예능을 지금 기준으로 단죄할 필요는 없다.

그 시절엔 그 시절의 문화가 있었고, 지금은 현재의 감수성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수년이 지나 다시 보며 “왜 저랬을까?” 하고 다시 생각하게 된다는 것은 우리가 예능을 바라보는 시각이 얼마나 성숙하고 확장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이효리와 유재석의 회고는 단순한 추억담을 넘어, 예능이 어떻게 시대를 반영하고 함께 변화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작은 기록이기도 하다.

김지혜 기자 kjh@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