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 아니면 필요 없다” 폐업 지시 내린 故 이병철 회장, 딸의 설득으로 찾은 식당에서 보인 반응은?
건강 악화된 회장 위해 일본까지 날아가 배워온 ‘특별한 요리’ 비화 공개
중식계의 살아있는 전설, 후덕죽 셰프가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회장과의 특별한 인연을 공개해 화제다. 최근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그는 폐업 직전까지 갔던 신라호텔 중식당 ‘팔선’을 살려낸 극적인 사연을 털어놓았다.
폐업 지시 내려졌던 팔선 기적적으로 살아나다
1979년 개업한 신라호텔의 중식당 ‘팔선’은 초창기 큰 위기를 맞았다. 당시 국내 최고 중식당으로 꼽히던 프라자호텔 ‘도원’과의 경쟁에서 밀렸기 때문이다. 이에 이병철 회장은 “1등이 아니면 할 필요가 없다”며 팔선의 폐업을 지시했다.
당시 부주방장이었던 후덕죽 셰프는 주방장이 그만두면서 졸지에 팔선을 이끌게 된 상황. 식당의 운명이 경각에 달린 순간, 구원투수로 나선 것은 이 회장의 장녀인 고 이인희 전 한솔그룹 고문이었다. 호텔 고문 역할을 하던 이 전 고문은 팔선의 음식을 맛본 뒤 “음식 맛이 달라졌다”고 평가하며 이 회장에게 직접 방문해볼 것을 권유했다.
후 셰프에 따르면, 이 회장은 처음에는 “문 닫으라고 한 데를 뭐 하러 가보냐”며 탐탁지 않아 했으나, “맛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다”는 딸의 끈질긴 설득에 결국 팔선을 찾았다. 음식을 맛본 이 회장은 “어? 완전히 달라졌네”라며 그 자리에서 폐업 지시를 철회했다. 이 한마디가 오늘날 국내 최고 중식당으로 꼽히는 ‘팔선’의 명성을 만들게 된 결정적 계기였다.
조리사가 상상도 못 할 질문을 던지던 사람
후덕죽 셰프는 이병철 회장을 ‘음식을 진정으로 즐기고 잘 아는 사람’으로 기억했다. 그는 “이 회장님은 조리사가 상상도 못 할 질문을 던지는 분이었다”며 일화를 소개했다. 대표적인 것이 “초밥 하나에 밥알이 몇 개고?”라는 질문이었다.
후 셰프는 이런 날카로운 질문을 받을 때 오히려 ‘아, 드디어 인정을 받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평범한 손님이라면 하지 않을, 음식의 본질을 꿰뚫는 질문을 통해 요리사로서의 자부심과 책임감을 동시에 느꼈다는 것이다. 그는 “그때 제 인생이 요리사로 완전히 전환됐다”고 말하며 이 회장과의 만남이 자신의 요리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되었음을 밝혔다.
회장님을 위해 일본까지 날아간 사연
이병철 회장의 건강이 악화되었을 때, 후덕죽 셰프는 그를 위한 약선 요리를 찾아 중국과 일본을 헤매기도 했다. 당시 폐가 좋지 않아 식사는 물론 약도 제대로 드시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비서실의 긴급 요청을 받은 그는 곧장 중국으로 향했다.
중국의 유명 약선 요리 전문점을 찾아갔지만 이미 문을 닫은 상태였고, 요리사들이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소식만 들을 수 있었다. 수소문 끝에 일본에서 해당 요리사들이 일하는 식당을 찾아냈지만, 비법을 알아내기는 쉽지 않았다. 손님으로 가장해 음식 사진을 찍다가 쫓겨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주방장이 퇴근할 때까지 식당 밖에서 기다렸다. 그의 간절함이 통했을까. 사정을 들은 주방장은 영업이 끝난 뒤 뒷문으로 그를 불러 요리를 직접 만들어주며 비법을 전수해주었다. 후 셰프는 “같은 요리사라 마음이 통한 것 같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렇게 배워온 요리가 바로 중국의 민간 약재인 ‘천패모’를 넣은 배찜 요리 ‘천패모설리’였다. 후 셰프는 “회장님께 천패모설리를 올렸더니 조금이나마 드셨다”며 “그때 정말 뿌듯했다”고 말했다.
한편, 중화민국 국적의 화교였던 후덕죽 셰프는 현재 한국으로 귀화했으며, 서울 앰배서더 호텔 풀만의 중식당 ‘호빈’에서 총괄 셰프로 활약하고 있다. 그는 1994년 호텔신라 이사로 승진하며 국내 호텔업계 최초의 조리사 출신 임원이라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조선미 기자 jsmg@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