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러운 우리 집안” 예능 발언 한 마디가 불러온 파장
12년 전 드라마 ‘각시탈’ 속 친일파 의사 캐릭터와 소름 돋는 평행이론
배우 하영이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랑스럽게 언급했던 증조부의 이력이 때아닌 논란의 중심에 섰다. 고종 황제를 진료한 엘리트 의사라는 사실 뒤에 감춰진 또 다른 행적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뜻밖에도 논란의 불씨는 10여 년 전 방영된 한 편의 드라마에서 시작됐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2012년 방영된 KBS 드라마 ‘각시탈’이 다시 소환됐다. 극 중 등장하는 한 친일파 캐릭터가 하영의 증조부와 놀랍도록 닮았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다. 논란은 하영이 직접 한 예능에서 “증조부께서 한양 최초로 양의원을 개원하셨고, 고종 황제를 진료하셨다”고 밝히면서 증폭됐다.
드라마 속 친일 의사가 현실로 소환된 이유
허영만 화백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각시탈’에는 우병준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대한제국 고종의 주치의를 지냈으나 변절해 조선총독부 병원장이 되는 친일파 의사로 그려진다. 누리꾼들은 하영의 증조부 안상호가 바로 이 캐릭터의 실제 모델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고종을 진료한 당대 최고의 엘리트 의사라는 공통점 때문이었다.
실제로 안상호는 1902년 일본 도쿄자혜의원의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인 최초로 일본 의사 자격증을 딴 인물이다. 1904년 귀국해 서울 종로에 근대식 양의원을 개원했으며, 고종 황제를 진료한 이력도 사실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자랑하고 싶었을 가족의 역사가 예상치 못한 논란으로 번진 셈이다.
‘모범 가정’ 선전 뒤에 숨겨진 기록들
하지만 역사적 기록은 그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안상호는 대표적 친일파 이완용이 고문을 맡았던 친일 단체 ‘대정실업친목회’에 가입해 평의원으로 활동했다. 그의 행적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기관지였던 매일신보는 안상호의 가정을 ‘내선일체 모범 가정’으로 선정해 대대적으로 선전하기도 했다. 일제가 조선인 사상 통제와 동화를 위해 내세운 선전 도구로 그의 집안이 활용된 정황이다.
논란이 거세지자 하영의 부친이 직접 해명에 나섰지만,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그는 인터뷰 도중 일제 침략을 미화하는 뉘앙스의 ‘한일합방’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대중의 공분을 샀다. 설상가상으로 그가 근거로 제시한 의료사 서적의 저자마저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로 밝혀지면서 논란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조선미 기자 jsmg@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