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크리스찬 베일과 그의 조수가 된 청년 ‘에드거 앨런 포’의 기묘한 수사.

루이스 바야드의 동명 소설 원작, 소름 돋는 분위기와 충격적인 반전.

1830년 겨울, 안개가 자욱한 미국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에서 한 생도가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된다.

단순한 비극으로 넘길 수 있었던 사건은 시신 안치소에서 시체의 심장이 감쪽같이 사라지며 끔찍한 살인 사건으로 전환된다. 군대의 명예가 실추될 것을 우려한 학교 측은 은밀하게 전직 형사 ‘오거스터스 랜도’(크리스찬 베일)에게 수사를 의뢰한다.
영화 페일 블루 아이(The Pale Blue Eye, 2023) / 넷플릭스
넷플릭스 영화 ‘페일 블루 아이’는 이처럼 어둡고 음울한 시대의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살인 사건으로 막을 연다.

크리스찬 베일과 스콧 쿠퍼 감독이 세 번째로 호흡을 맞춘 이 작품은 단순한 범죄 스릴러를 넘어, 한 천재 작가의 탄생 비화를 엮어 넣으며 지적인 재미까지 안겨준다.

어둠의 시인, 탐정의 조수가 되다

랜도는 냉철하고 유능하지만 아내와 딸을 잃은 깊은 상실감에 갇혀 사는 인물이다. 그는 폐쇄적인 사관학교 내부의 정보를 얻기 위해 한 명의 조수를 끌어들인다. 바로 괴짜로 소문난 사관생도, ‘에드거 앨런 포’(해리 멜링)다.

영화는 미국 문학사에서 가장 독창적인 작가로 꼽히는 에드거 앨런 포가 작가 지망생 시절, 실제 살인 사건 수사에 휘말렸다는 대담한 상상력에서 출발한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두들리’로 얼굴을 알린 해리 멜링은 우리가 알던 포의 어둡고 예민한 감성을 완벽하게 스크린에 재현한다. 시를 읊고 죽음의 미학을 논하는 이 젊은 시인은 연쇄 살인마의 심리를 파고드는 데 의외의 재능을 보인다.

랜도의 노련한 추리력과 포의 번뜩이는 통찰력이 결합하며 사건은 예측불허의 방향으로 흘러간다.
영화 페일 블루 아이 스틸컷/ 넷플릭스

실화인가 허구인가, 진실과 거짓의 경계

‘페일 블루 아이’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실존 인물과 허구의 사건을 정교하게 엮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에드거 앨런 포는 1830년 웨스트포인트에 입학했지만, 1년도 채우지 못하고 퇴학당했다. 영화는 그가 학교에 머물렀던 짧은 기간에 끔찍한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면 어땠을까 하는 가정에서 이야기를 쌓아 올린다.

이는 그의 대표작 ‘고자질하는 심장’, ‘검은 고양이’ 등에 나타난 인간 내면의 어둠과 광기가 바로 이 사건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설득력 있는 가설을 제시한다.

영화는 포가 어떻게 미스터리 장르의 대부가 되었는지에 대한 하나의 ‘팬 픽션’인 셈이다.

관객은 영화를 따라가며 어디까지가 역사적 사실이고 어디부터가 작가의 상상력인지 추리하는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영화 페일블루아이, 크리스찬 베일 / 넷플릭스

예측을 뒤엎는 충격적 결말

영화는 시종일관 잿빛 하늘과 눈 덮인 황량한 풍경을 비추며 뼛속까지 시린 고딕 스릴러의 분위기를 유지한다.

다니엘 마퀴스 박사(토비 존스)와 그의 기이한 가족들, 오컬트에 심취한 전문가(로버트 듀발) 등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의심스럽다.

관객이 범인의 윤곽을 쫓아 숨 가쁘게 달려갈 때쯤, 영화는 모든 예상을 뒤엎는 거대한 반전을 꺼내놓는다.

원작 소설가마저 영화의 각색에 놀라움을 표했을 정도의 이 결말은, 사건의 진실뿐만 아니라 주인공 랜도와 포의 관계까지 완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만든다.

‘믿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보는 것은 절반만 믿어라’는 포의 유명한 경구처럼, 영화는 마지막 1분까지 관객의 뒤통수를 친다.

탄탄한 서사와 배우들의 밀도 높은 연기, 그리고 영리한 반전을 갖춘 웰메이드 스릴러를 찾는다면 ‘페일 블루 아이’는 후회 없는 선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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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페일 블루 아이(The Pale Blue Eye, 2023) 포스터 / 넷플릭스


이지희 기자 jeehee@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