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버텼다”… K-직장인 ‘극사실주의’에 넷플릭스 속 ‘내 얘기’ 같은 작품들.

월요일을 알리는 알람 소리가 지겹다. ‘오늘만 버티자’는 심정으로 나선 출근길, 만원 지하철에 몸을 싣고 나면 이미 하루의 에너지를 다 쓴 기분이다. 잦은 야근, 불합리한 지시, 끝없는 실적 압박까지. 2040 ‘K-직장인’의 하루는 고단하다.

이들을 위해 지독한 현실 고증으로 깊은 공감을 주거나, 통쾌한 이야기로 답답한 속을 뚫어주며 내일을 버틸 작은 힘이 되어주는 작품들을 모았다.

‘미생’, 10년이 지나도 여전히 유효한 ‘바이블’

드라마 미생 / tvN
방영 10년이 지났지만 ‘미생’은 여전히 ‘K-오피스 드라마’의 교과서로 불린다. “우린 아직 다 미생이야”라는 대사처럼, 완생(完生)이 되기 위해 발버둥 치는 직장인들의 현실을 이보다 더 날카롭게 포착한 작품은 드물다.

인턴 장그래의 고군분투는 갓 입사한 사회초년생의 불안을, 오 과장의 어깨를 누르는 책임감은 10년 차 중간관리직의 고뇌를 대변한다. 극적인 성공이나 판타지 없이, 묵묵히 하루를 버텨내는 인물들의 모습은 씁쓸하면서도 깊은 공감을 안긴다.

‘미생’을 다시 찾는 이유는, 그 지독한 현실감 속에서 ‘나만 힘든 게 아니었구나’ 하는 작은 동질감을 발견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해방일지’, 지옥철에서 나를 ‘추앙’하기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 넷플릭스
경기도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직장인의 삶은 그 자체로 거대한 드라마다. ‘나의 해방일지’는 왕복 3시간, 지옥 같은 통근길에서 에너지를 소모당하는 현대인의 내면을 정밀하게 그린다.

극 중 염미정(김지원 분)의 무기력하고 공허한 표정은 많은 2030 직장인들의 ‘디폴트 값’과도 같았다. “나를 추앙해요”라는 외침은 단순한 연애 감정을 넘어,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고 싶은 K-직장인의 절박한 ‘해방’ 선언이다.

드라마는 극적인 사건 대신, 일상의 균열과 작은 변화를 통해 스스로를 회복해가는 과정을 잔잔하게 따라간다. 텅 빈 마음에 조용한 위로가 필요할 때 이만한 작품이 없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유쾌함으로 뚫는 부조리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 넷플릭스
때로는 현실을 잊게 할 유쾌함이 필요하다. 90년대 레트로 감성을 배경으로 한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묵직한 현실 대신 경쾌한 반란을 택한다.

고졸 출신이라는 이유로 커피 타기, 담배 심부름 등 잡무만 맡던 여성 직장인들이 주인공이다. 이들은 승진을 위해 등록한 ‘영어토익반’에서 우연히 회사의 거대한 비리를 알게 되고, 내부 고발자로 나선다.

‘스펙’은 부족할지언정 ‘일’ 하나는 야무지게 해내는 이들의 연대는 답답한 조직 문화에 익숙한 이들에게 묘한 쾌감을 준다. 부조리한 현실에 맞서는 이들의 당찬 행보가 경쾌한 웃음과 함께 응원의 메시지를 전한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25년 차 베테랑의 ‘짠한’ 생존기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 넷플릭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모두가 부러워하는 타이틀을 가졌지만, 그의 현실은 위태롭다.

최근 넷플릭스 ‘오늘의 TOP TV 쇼’ 1위를 기록하며 화제를 모은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는 K-직장인의 다음 단계에 대한 현실적 불안감을 정확히 건드린다.

25년 차 베테랑 영업맨 김낙수(류승룡 분)가 하루아침에 조직개편의 칼바람을 맞고 좌천성 발령을 받는 과정은, ‘미생’의 장그래가 20년 뒤 겪을 법한 일처럼 다가온다.

아직 결말까지 공개되지 않아서인지, 통쾌한 ‘사이다’는 아직 없지만, 어떻게든 버텨내려는 40대 가장의 짠한 생존기는 그 자체로 묵직한 공감을 자아낸다.

‘서울 자가’와 ‘대기업 부장’이라는 타이틀이 생존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현실이 많은 3040 직장인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이 작품들은 K-직장인의 삶을 다양한 방식으로 투영한다. 때로는 신입의 쓴맛을(미생), 때로는 일상의 고단함을(나의 해방일지), 혹은 불의에 맞서는 통쾌함을(삼진그룹), 그리고 베테랑의 위기를(김부장 이야기) 보여준다.

오늘 밤, 이 드라마들과 함께 고단했던 하루를 마무리하며 내일을 버틸 작은 힘을 얻어보는 것은 어떨까.

이지희 기자 jeehee@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