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사건이 남긴 보이지 않는 상처, 뇌·신경·신체가 겪는 변화와 회복 방법
보이지 않는 상처, 일상 속에서 되살아나다
극심한 고통이나 충격을 경험한 사람들은 사건이 끝난 후에도 오랜 시간 마음속 혼란에 시달리곤 한다. 캐나다의 에이미 오어는 반복되는 극심한 복통으로 병원을 전전했고 결국 감염된 담낭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으며 육체적 문제를 해결했다. 그러나 진짜 고통은 그때부터였다. 사소한 통증에도 공황에 빠지고 악몽으로 잠에서 깨어나는 등 몸과 마음이 모두 위기 상태에 놓였다. 결국 그는 자신이 겪은 1년의 고통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이어졌음을 인정해야 했다.전문가들은 “전쟁, 폭행 같은 극단적 사건뿐 아니라, 장기적 고통, 애도, 학대, 실패한 관계 등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모든 사건이 트라우마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만큼 현대인의 삶에 트라우마는 더 이상 드물지 않은 문제다.
트라우마는 뇌 속에서 어떻게 자리 잡는가
전문가들은 “비명, 냄새, 특정 목소리 등 감각 단서 하나에도 몸이 당시의 공포를 그대로 재현한다”고 설명한다. 그 과정에서 신경계는 과각성 상태가 되고, 이는 ▲불면 ▲불안 ▲우울 ▲공황 ▲만성 통증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특히 소아기 학대·폭언·방임처럼 성장 과정에서 반복된 트라우마는 ‘복합 PTSD’로 이어지기 쉽다. 이는 성인이 된 후에도 관계 회피, 낮은 자존감, 만성적인 불안 등으로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린다.
몸에 새겨지는 트라우마… 질병으로 이어지는 악순환
연구에 따르면 트라우마 경험자는 ▲소화 장애 ▲면역 기능 저하 ▲호르몬 불균형 ▲자가면역질환 ▲심혈관질환 발병률 증가 등 다양한 신체 문제를 겪을 가능성이 높다.
한 전문가는 “트라우마 후 스트레스 호르몬이 장기간 분비되며 장내 미생물 환경이 변하고 염증 반응이 증가한다. 실제로 PTSD 환자에게 과민성 장증후군이 흔하다”고 말한다.
또한 학대·가정폭력·연인관계 폭력 등 지속적인 스트레스 환경에 놓였던 사람들은 만성 피로, 체중 변화, 편두통 등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신체가 위협 상태를 ‘기억’하고 지속적으로 방어 모드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억압된 기억, 왜 시간이 지나 되살아나는가
트라우마는 때때로 기억 속에 잠식되어 있는 듯 보이지만, 특정 자극을 만나면 갑작스럽게 떠오르기도 한다. 이는 뇌가 과도한 충격을 받은 순간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기억을 분절하거나 봉인하기 때문이다.전문가들은 “억압된 기억은 시간이 지나 안전한 환경이 조성될 때 비로소 떠오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는 개인이 ‘문제없다’고 믿어온 삶이 어느 순간 흔들리며 감정 폭발·불면·공황 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과학적 방법들
트라우마 전문 치료법
-안구운동 민감소실: 양쪽 자극을 통해 단편적 기억을 재처리하는 방식
-노출 치료: 안전한 환경에서 사건을 재경험하며 감정 조절 능력을 회복
-마음챙김 기반 스트레스 완화: 현재에 집중하며 신경계 과각성을 낮춤
신체를 통한 회복
-요가, 걷기, 마사지, 아쿠프레셔 등은 몸에 저장된 긴장감을 완화
-일부 전문가들은 ‘전신 흔들기’와 같은 신체 해방 기법을 추천
-영양 관리와 생활 습관 개선
트라우마로 염증 반응이 증가한 몸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가공식품·설탕 위주의 위안 음식 대신 단백질, 채소, 과일 중심의 항염 식단이 도움이 된다.
사회적 지지와 공동체 회복
전문가들은 “트라우마 회복의 핵심은 고립이 아닌 연결”이라고 강조한다. 지지 그룹·상담·안전한 관계는 회복 속도를 크게 높인다.
트라우마 이후의 삶… 더 강해질 수 있다
트라우마는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지만, 회복 과정을 통해 더 큰 회복탄력성을 얻은 사례도 많다.한 전문가는 “트라우마를 극복한 사람은 감정 인식 능력과 대처 능력이 크게 향상되며 삶의 우선순위를 재정립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상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 상처를 이해하고 관리하는 힘이 생기는 것—바로 회복의 의미다.
이서윤 기자 sylee@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