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부 전원 포함 86명 광주 방문, 자필 사과문 낭독하며 고개 숙였다
5·18민주묘지 참배로 이어진 사죄, 두 학교가 나눈 다음 약속은
서울시교육청 제공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불거진 5·18민주화운동 비하 구호 논란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가해자로 지목된 배재고 야구부가 광주를 직접 찾은 것이다. 이들의 방문은 단순 사과를 넘어 역사적 상처와 화해라는 무거운 주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야구부 전원과 교직원, 학부모, 교육감까지 총 86명이 동행한 대규모 방문단이 광주일고에 도착했을 때, 현장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흘렀다.
무거운 침묵 속, 배재고가 먼저 고개를 숙였다
침묵을 깬 것은 배재고 야구부 주장이었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직접 작성한 사과문을 읽어 내려갔다. “부적절한 언행으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드려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는 내용이었다.주장은 “야구 실력보다 인성과 태도가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깨달았다”며 반성의 뜻을 분명히 했다. 지도자 역시 책임을 피하지 않았다. 권오영 감독은 “승패에만 집착해 잘못된 응원을 제때 제지하지 못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과오”라며 깊이 자성했다.
광주일고는 뜻밖의 위로로 화답했다
예상과 달리 광주일고의 반응은 단호한 질책이 아니었다. 이규연 교장은 눈물을 보이는 배재고 학부모들을 본 뒤 “마음이 너무 아파 원래 하려던 말을 잊어버렸다”며 입을 열었다.그는 고개를 숙인 배재고 선수들을 향해 “학생들은 고개를 들고 어깨를 펴라. 여러분의 미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격려했다.
조윤채 야구부 감독도 “그라운드에서 다시 만나 정정당당하게 멋진 승부를 펼치자”고 화답하며 미래를 이야기했다.
사과를 넘어 미래 교류까지 약속했다
화해의 자리는 광주일고 교내에 있는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탑 참배로 이어졌다. 배재고 방문단은 광주로 오는 과정에서 5·18민주화운동 관련 역사 교육을 미리 이수한 상태였다.이후 이들은 5·18민주묘지를 찾아 오월 영령 앞에 분향하며 사죄의 의미를 더했다. 이 자리에서 김대중 전남광주 교육감은 오는 11월 3일 학생독립운동기념일에 두 학교가 스포츠 교류전을 열자는 구체적인 제안까지 내놓았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학생들의 실수를 넘어, 우리 사회가 역사의 아픔을 어떻게 교육하고 화해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숙제를 남겼다. 서울시교육청은 다음 달 21일까지 모든 학교 운동부를 대상으로 인권교육 실태를 점검하고, 혐오 표현 금지 관련 교육자료를 개발해 보급하기로 했다.
장해영 기자 jang99@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