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사남’에 처참하게 밀렸는데
‘휴민트’, 넷플릭스 TOP10 깜짝 역주행

235억원을 들였지만 극장 성적은 198만명. ‘망했다’는 평가까지 따라붙었던 류승완 감독의 ‘휴민트’가 넷플릭스에서 제대로 부활했다. 극장에서는 외면받았던 이 영화, 왜 집에서는 사람들이 찾아보기 시작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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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필 ‘왕사남’이랑 동시기 개봉…235억 대작의 흥행 참패

조인성, 박정민, 박해준, 신세경. 배우 이름만 보면 실패하기도 쉽지 않아 보였다. 여기에 ‘베테랑’, ‘모가디슈’, ‘밀수’를 만든 류승완 감독까지 붙었다.

하지만 상대가 너무 강했다. 지난 2월 11일 개봉한 ‘휴민트’ 앞에는 일주일 먼저 극장에 걸린 ‘왕과 사는 남자’가 버티고 있었다. ‘왕과 사는 남자’는 입소문을 타고 무섭게 관객을 끌어모으더니 결국 1400만 관객을 돌파했다. 류승완 감독조차 당시 경쟁 상황을 두고 “뭐, 밀리는 거죠”라고 인정했을 정도다.

‘휴민트’는 개봉 첫날 박스오피스 1위로 출발했지만 오래 버티지 못했다. 최종 관객은 약 198만명. 제작비 235억원에 손익분기점이 약 400만명으로 알려졌던 만큼 극장 성적만 보면 사실상 흥행 참패였다.

영화 자체에 대한 평가도 극과 극이었다. “액션은 역시 류승완”이라는 호평과 함께 “스토리가 뻔하다”는 혹평도 따라붙었다. 화려한 총격전과 카 체이싱, 배우들의 연기는 볼 만하지만 반드시 극장까지 찾아가야 할 정도냐는 데서는 관객들의 의견이 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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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장서 외면받더니…넷플릭스 가자 글로벌 1위

그런데 극장에서 내려온 뒤 상황이 묘하게 뒤집혔다.

‘휴민트’는 개봉 49일 만인 지난 3월 넷플릭스에 공개됐다. 그리고 공개 5일 만에 1100만 시청수를 기록하며 넷플릭스 글로벌 TOP10 영화 비영어 부문 1위에 올랐다. 한국뿐 아니라 대만, 싱가포르 등 14개국에서 정상을 차지했고 전 세계 67개국 TOP10에 진입했다.

여기서 끝날 줄 알았지만 또 한 번 살아났다. 지난 23일에는 넷플릭스 코리아 ‘오늘 대한민국의 TOP 10 영화’ 10위에 다시 이름을 올렸다. 공개된 지 약 5개월이 지났는데 다시 국내 시청자들이 찾아보기 시작한 것이다.

극장에서는 200만명도 넘기지 못했던 영화가 OTT에서는 글로벌 1위에 오르고 몇 달 뒤 다시 순위권에 들어오는 정반대의 성적표를 받아든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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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관 갈 정도는 아닌데…” 집에서 보니 달랐다

‘휴민트’가 넷플릭스에서 유독 강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일단 틀어볼 만한’ 조건이 상당히 좋다. 조인성, 박정민, 박해준, 신세경이라는 익숙한 얼굴에 류승완 감독의 이름까지 있다. 극장에서는 티켓값을 내고 2시간을 투자할지 고민해야 하지만 이미 넷플릭스를 구독하고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썸네일에서 배우들의 얼굴을 보고 부담 없이 재생 버튼을 누르기 좋은 작품이다.

영화의 성격도 OTT와 묘하게 잘 맞는다. 러닝타임은 119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배경으로 남북 정보요원과 북한 총영사, 식당 종업원이 얽히고 총격전과 맨몸 액션, 카 체이싱이 이어진다. 복잡하게 생각하면서 보기보다는 배우들의 연기와 액션을 따라가며 보기 좋은 장르물에 가깝다.

극장에서 약점으로 지적됐던 부분이 집에서는 상대적으로 덜 거슬릴 수도 있다. 익숙한 첩보물의 공식과 예상 가능한 전개는 영화관에서는 아쉬움이 될 수 있지만, OTT에서는 오히려 진입장벽을 낮춘다. 처음 보는 설정을 공부하듯 따라갈 필요 없이 편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해외 시청자에게는 남북 요원이 충돌하는 한국형 첩보물이라는 설정 자체가 색다른 볼거리다. 여기에 총격전과 추격전처럼 언어 장벽이 비교적 낮은 액션도 글로벌 OTT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만한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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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인성 vs 박정민, 결국 배우 보는 맛이 있었다

‘휴민트’의 또 다른 무기는 배우다.

국가정보원 블랙 요원 조 과장 역의 조인성과 북한 보위성 조장 박건 역의 박정민이 극의 중심에서 맞붙는다. 여기에 북한 총영사 황치성 역의 박해준, 북한 식당 종업원 채선화 역의 신세경이 끼어들면서 네 사람 모두 서로 다른 목적을 품고 상대를 의심한다.

특히 조인성과 박정민은 영화의 시작부터 류승완 감독이 염두에 뒀던 조합이다. 류 감독은 ‘밀수’ 작업을 마친 뒤 두 배우를 전면에 내세운 영화를 찍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다.

액션 역시 배우마다 다르다. 총을 사용하는 조인성부터 거칠고 묵직한 분위기로 변신한 박정민까지 캐릭터에 맞춰 맨몸 격투와 총기 액션, 추격전을 달리 배치했다. 스토리에 대한 호불호와 별개로 “배우 보는 맛”과 “액션 보는 맛”만큼은 분명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극장에서는 하필 1400만 영화를 만나 198만명에 멈췄다. 그러나 넷플릭스로 자리를 옮기자 글로벌 1위에 올랐고, 공개 5개월 뒤 다시 국내 TOP10까지 올라왔다.

‘흥행 참패작’이라고 끝난 줄 알았던 ‘휴민트’의 생명은 의외로 길었다. 극장에서 굳이 돈 내고 볼 영화는 아니라고 지나쳤던 사람들이 집에서 하나둘 재생 버튼을 누르기 시작하면서다. ‘휴민트’에는 극장보다 넷플릭스가 더 잘 맞는 무대였는지도 모른다.

김은정 기자 kej@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