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화성 전곡항에 숨겨진 비경, 1억 년 역사의 층상응회암 해상관찰로를 걷다.
입장료·주차비 모두 ‘0원’, 전문가 해설까지 무료… 가을 나들이, 요트와 지질 탐사를 한번에.
가을바람이 코끝을 스치는 9월, 경기도 화성시 전곡항이 아는 사람만 아는 새로운 나들이 명소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 5월 말, 대중에게 문을 연 ‘전곡항 층상응회암 해상관찰로’는 단순한 산책로가 아니다. 1억 년 지구의 시간을 고스란히 품은, 그야말로 살아있는 지질 학습장이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나무 데크길을 걷다 보면, 발밑으로 펼쳐지는 장엄한 풍경에 절로 감탄이 나온다. 책으로만 보던 지구의 역사가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지는 순간이다.
1억 년 시간 품은 531m의 산책길
총길이 531m, 폭 2.0m 규모로 조성된 해상관찰로는 전곡항의 해안선을 따라 유려하게 이어진다. 이 길의 진짜 주인공은 길 아래, 파도가 스쳐 지나가는 절벽의 암석, 바로 ‘층상응회암’이다.이 암석은 약 1억 년 전, 한반도에 공룡이 활보하던 중생대 백악기 시절의 화산 활동으로 쌓인 화산재가 굳어져 만들어졌다. 마치 거대한 시루떡처럼 수평으로 겹겹이 쌓인 층리는 그 자체로 압도적인 풍경을 만들어낸다. 오랜 세월 파도에 깎여나간 해식 절벽과 땅의 움직임이 남긴 단층 구조는 국내에서도 보기 드문 지질학적 가치를 지닌다.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 2024년, 이 일대는 화성국가지질공원으로 공식 지정됐다. 이로써 전곡항은 수려한 항구 풍경과 함께 학술적 깊이까지 더한 특별한 여행지로 거듭났다.
섬에서 육지로, 바다 위 지질학 교실
해상관찰로가 들어선 고렴산 일대는 본래 섬이었지만, 시화호 방조제가 건설되면서 육지와 연결됐다. 덕분에 방문객들은 바다와 육지가 어우러진 독특한 지형 속에서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듯한 신비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산책로 주변에는 층상응회암뿐만 아니라 퇴적암, 단층, 파식대지 등 다양한 지질 구조가 밀집해 있어,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자연이 만든 거대한 박물관을 둘러보는 듯하다. 조수간만의 차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갯벌과 드러나는 암석의 모습은 방문할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준다.
지갑은 가볍게, 즐거움은 두 배로
전곡항 해상관찰로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이 모든 것을 무료로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넉넉한 고렴산수변공원 주차장에 차를 대는 것부터 관찰로 입장까지 어떠한 비용도 발생하지 않는다.여기에 화룡점정은 무료로 제공되는 지질 해설 프로그램이다. 화성시는 올해 5월부터 12월까지 매일 3회(10:30, 13:30, 15:00) 전문 해설사와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화성시 통합 예약 시스템을 통해 예약만 하면, 눈앞의 암석이 품고 있는 1억 년 전 이야기를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다. 한 지질 전문가는 “수도권에서 이 정도 규모와 보존 상태의 층상응회암을 이토록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는 곳은 거의 유일하다”며 “아이들의 현장 학습 장소로도 최적”이라고 평가했다.
올가을, 멀리 떠나기 부담스럽다면 전곡항으로 향해보는 것은 어떨까. 붉게 물드는 서해의 낙조를 배경으로 1억 년의 시간을 품은 바닷길을 걷는 경험은 잊지 못할 가을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