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불시착’ 스위스 여행 코스
이젤트발트·융프라우 촬영지
드라마가 끝난 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이곳의 인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한류 드라마 한 편이 조용했던 호수마을을 ‘인증샷 성지’로 바꿨다. 이젤트발트로 향하는 버스와 유람선에는 카메라를 든 한국인 관광객이 빠지지 않는다. 스위스관광청도 이젤트발트를 ‘사랑의 불시착’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마을로 소개한다.
이젤트발트는 인터라켄에서 차나 버스로 약 20분 거리에 있다. 호수 위로 불쑥 튀어나온 반도에 자리해, 마을 전체가 한 장의 엽서처럼 보인다. 드라마 속 장면을 재현하려고 부두만 찍고 떠나는 여행객도 많지만, 정작 이곳의 매력은 그보다 천천히 걸을 때 더 선명해진다.
선착장 근처에서 호수를 따라 걷다 보면 목조 샬레와 작은 정원, 정박한 보트가 차례로 펼쳐진다. 날씨가 맑은 날에는 호수 색이 유난히 푸르게 빛나고, 구름이 끼면 산과 물의 경계가 흐릿해져 한층 몽환적인 분위기가 난다. ‘사랑의 불시착’에서 리정혁이 피아노를 연주하던 순간이 특별했던 것도 화려한 세트가 아니라, 고요한 호수와 산이 함께 만든 화면 덕분이었다.
가을에는 더욱 차분하다. 여름 성수기의 북적임이 한풀 꺾인 뒤, 호숫가 나무가 노랗고 붉게 물들기 시작한다. 단풍 명소를 찾아 산으로만 올라가던 스위스 여행과는 또 다른, ‘호수 앞에서 쉬는 하루’가 가능하다.
이젤트발트가 단순한 촬영지를 넘어 화제가 된 이유는 드라마가 만든 관광 열기 때문이다. 현지 보도에 따르면 주민 약 400명이 사는 마을에 하루 평균 약 1000명의 방문객이 찾을 정도로 인파가 늘었다. 특히 나무 부두는 사진을 찍으려는 여행객이 길게 줄을 서는 명소가 됐다.
마을은 혼잡과 사생활 침해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부두 앞에 개찰구를 설치했다. 현재 부두에 들어가 사진을 찍으려면 5스위스프랑을 내야 한다. ‘셀피 요금’이라는 말까지 나왔지만, 오히려 마을의 생활 공간을 보호하면서 여행객도 편하게 풍경을 즐길 수 있게 됐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방문할 때는 한 가지를 기억하면 좋다. 이젤트발트는 테마파크가 아니라 주민들이 실제로 생활하는 작은 마을이다. 부두 밖 주택가에서 큰 소리로 떠들거나 사유지에 들어가는 일은 피해야 한다. 짧은 인증샷도 좋지만, 호숫가 산책과 카페에서의 휴식을 함께 더하면 훨씬 근사한 여행이 된다.
이젤트발트만 찍고 떠나기 아쉽다면 드라마 속 스위스 장면을 따라 융프라우 지역으로 동선을 넓혀볼 만하다. 융프라우요흐, 클라이네 샤이덱, 아이거글레처, 그린델발트 피르스트 등이 주요 촬영지다. 설산을 배경으로 한 장면, 패러글라이딩 장면을 떠올리며 이동하다 보면 드라마 속 스위스가 한 장면씩 현실로 이어진다.
여행 동선은 인터라켄을 거점으로 잡으면 편하다. 오전에는 이젤트발트 부두와 브리엔츠 호수를 둘러보고, 오후에는 유람선이나 기차를 이용해 주변 산악 마을로 이동하는 식이다. 욕심내어 모든 촬영지를 하루에 담기보다, 가장 기억나는 장면 한두 곳을 골라 천천히 머무는 편이 만족도가 높다.
결국 이젤트발트에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는 드라마 속 주인공을 흉내 내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화면으로 봤을 때도 비현실적이었던 풍경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 그리고 그곳에서 잠시 드라마의 한 장면 안에 들어온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의 목적이 ‘유명한 곳 체크’에서 ‘내가 좋아한 장면 속으로 들어가기’로 바뀐 요즘, 이젤트발트는 가장 선명한 세트제팅 여행지다.
김은정 기자 kej@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