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장에서 현대차 투싼 ‘유령 제동’ 현상으로 집단소송 제기. 안전의 핵심인 전방 충돌 방지 보조 시스템이 도마 위에 올랐다.

매뉴얼 속 ‘오작동 가능’ 문구가 이번 소송의 최대 쟁점으로 떠오르며 논란이 커지고 있다.

투싼 / 현대자동차
투싼 / 현대자동차


미국에서 현대자동차의 주력 SUV 투싼이 예기치 않은 급제동, 이른바 ‘유령 제동’ 현상으로 법적 분쟁의 중심에 섰다. 멀쩡한 도로를 달리던 차가 갑자기 멈춰서는 아찔한 상황이 반복된다는 주장이 제기되며 현지 차주들이 집단소송에 나선 것이다. 이번 사태는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의 신뢰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전방 충돌 방지 보조(FCA) 시스템의 오작동 가능성, 제조사의 책임 범위, 그리고 차량 매뉴얼에 담긴 문구의 해석을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립한다. 안전을 위해 믿었던 기능이 오히려 운전자를 위협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것도 없는데 ‘급제동’…논란의 시작



투싼 실내 / 현대자동차
투싼 실내 / 현대자동차


소송은 미국 캘리포니아 중앙지방법원에 접수됐다. 원고인 데니스 스펄링은 자신의 투싼 차량이 전방에 아무런 장애물이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수시로 급제동을 일으켰다고 주장했다. 다행히 직접적인 사고나 부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고속으로 주행하는 도로 한복판에서 이런 현상이 발생한다면 대형 추돌 사고를 유발할 수 있는 심각한 문제다.

이러한 주장은 스펄링 개인의 경험에 그치지 않았다. 현지 온라인 커뮤니티와 포럼 등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다른 투싼 차주들의 증언이 잇따르면서 논란은 집단소송으로 번졌다. 이들은 차량의 안전 시스템이 오히려 위험을 초래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스스로 결함 인정한 매뉴얼 문구



투싼 / 현대자동차
투싼 / 현대자동차


이번 소송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아이러니하게도 현대차가 직접 제공한 차량 사용 설명서다. 2025년형 투싼 매뉴얼에는 특정 조건에서 FCA 기능이 부적절하게 작동하거나 꺼질 수 있다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다. 젖은 노면의 빛 반사, 터널 진입, 레이더 센서 주변의 급격한 온도 변화 등이 오작동 가능 사례로 제시됐다.

심지어 앞서가는 차량의 형태가 특이하거나 언덕길을 오르내리는 평범한 주행 상황까지 포함됐다. 원고 측은 이처럼 광범위한 예외 조항이야말로 현대차가 시스템의 불안정성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다는 명백한 증거라고 주장한다. 사실상 대부분의 일상 주행 환경에서 오작동 가능성을 열어둔 셈이라는 비판이다.

알고도 팔았나, 미리 고지했나



투싼 / 현대자동차
투싼 / 현대자동차


원고 측은 현대차가 시스템의 결함을 알면서도 차량을 판매했으며, 매뉴얼에 면책성 문구를 넣어 책임을 회피하려 했다고 강하게 비판한다. 특히 고속 주행 중 급제동이 일으킬 수 있는 치명적인 위험에 대해 충분히 경고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한다.

현재 해당 사안은 미국 수출형 모델과 관련된 이슈로 알려졌으며, 내수형 모델과는 일부 장비 사양이 다른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국내 차주들 사이에서도 유사 경험담이 공유되며 우려가 확산되는 분위기다. 제조사가 첨단 기술의 한계를 어디까지 소비자에게 알려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규모 리콜 사태로 번질까



투싼 / 현대자동차
투싼 / 현대자동차


집단소송 결과에 따라 현대차는 대규모 리콜이나 거액의 배상 책임을 져야 할 수도 있다. 운전자의 안전을 보조하기 위해 도입된 기술이 도리어 위험 요소로 지목된 만큼, 브랜드 신뢰도에 미칠 타격도 적지 않다. 글로벌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하는 투싼이 논란에 휩싸인 상황에서 현대차가 기술적 결함 여부와 책임 공방을 어떻게 풀어갈지 업계의 시선이 집중된다.

이번 사태는 비단 현대차만의 문제가 아니다. 자율주행 기술로 나아가는 과도기에서 모든 자동차 제조사들이 마주한 첨단 보조 장치의 역설을 보여준다. 미국 법원의 판단과 현대차의 후속 조치가 향후 ADAS 기술의 안전 기준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지켜볼 일이다.

오종학 기자 fivejh@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