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는 잘 만들었다는 평가에도 지갑은 닫혔다

팰리세이드 대항마 기대 속, 전기차 시장 침체라는 벽에 부딪힌 현실



기아의 대형 전기 SUV ‘EV9’이 출시된 지 1년이 지났지만, 도로 위에서 마주치기는 좀처럼 쉽지 않다. ‘팰리세이드의 대항마’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모델이다. 패밀리카를 고민하는 아빠들의 ‘드림카’ 목록에도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높은 완성도에 대한 긍정적 평가와 실제 판매 성적표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존재한다. 차량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소비자들이 선뜻 지갑을 열지 못하게 만든 복합적인 배경이 자리 잡고 있다.

1억 육박하는 가격표, 대안이 너무 많았다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높은 가격이다. EV9의 시작 가격은 7,000만 원대 중반이지만, 선호도 높은 옵션을 추가하면 실구매가는 9,000만 원을 훌쩍 넘어 1억 원에 육박한다. 보조금을 받더라도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이 예산이라면 소비자들의 선택지는 크게 넓어진다. 당장 제네시스 GV80 가솔린 모델을 충분히 살 수 있고, 수입 브랜드 SUV까지 가시권에 들어온다. “이 돈이면 차라리...”라는 말이 나오는 건 자연스러운 시장 반응인 셈이다.

전기차 시장 침체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







단순히 가격만으로 EV9의 부진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전기차 시장 전반에 불어닥친 한파가 더 큰 영향을 미쳤다. 한때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전기차 수요는 충전 인프라 부족, 보조금 축소, 비싼 수리비 등의 문제로 주춤하는 양상이다.

이러한 시장 분위기 속에서 EV9처럼 고가에 포진한 전기차는 직격탄을 맞았다. 차량에 대한 관심이 실제 계약으로 이어지기까지, 가격 부담과 전기차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라는 이중의 장벽을 넘어야 했다.

잘 만든 차와 잘 팔리는 차의 교훈





흥미로운 점은 EV9 자체에 대한 평가는 결코 나쁘지 않다는 사실이다. 넓은 실내 공간, 혁신적인 디자인, 첨단 기능 등 상품성 측면에서는 호평이 주를 이룬다. 해외 시장에서는 ‘올해의 차’ 후보에 오르는 등 경쟁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결국 EV9의 사례는 ‘좋은 차’가 반드시 ‘잘 팔리는 차’는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차량의 완성도와 별개로, 소비자의 구매 결정을 이끄는 것은 결국 가격 경쟁력과 시장의 전반적인 흐름이라는 현실을 증명한 셈이다.



서혜지 기자 seog@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