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만 원대 ‘가성비 전기차’로 불리며 선풍적인 인기를 끈 현대 캐스퍼 일렉트릭의 명성에 금이 가고 있다. 출고 후 반년도 채 되지 않아 벌써 5번이 넘는 무상수리가 터져 나오면서다. “돈 주고 베타테스터가 된 기분”이라는 차주들의 절규는, 길고 긴 출고 대기 끝에 마주한 쓰라린 현실을 대변한다.
현대차 2026 캐스퍼 일렉트릭 실내 디스플레이 (출처=현대차)
“고쳐도 고쳐도 끝이 없다”
문제는 잊을 만하면 터진다는 점이다. 올해 들어서만 벌써 5건이 넘는 무상수리가 진행됐다. 특히 이달 들어서는 열흘 사이에만 통합충전제어장치(ICCU), 냉각수 누유, 통합형 전동 브레이크 소프트웨어 오류 등 핵심 부품 관련 수리가 무더기로 쏟아졌다. 1만 대가 훌쩍 넘는 차들이 대상이다.
현대차 2026 캐스퍼 일렉트릭 측정면 (출처=현대차)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지난봄에도 ICCU 통신 불량과 공조 장치 이상으로 서비스센터를 들락거려야 했다. 전기차의 심장과 두뇌에 해당하는 전력·제어 장치에서 문제가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점은 소비자들의 불안감을 키우기에 충분하다.
현대차 캐스퍼 일렉트릭 측면 (출처=현대차)
“내수 고객은 봉?”… 기형적 생산 구조의 그늘
이러한 품질 논란의 배경에는 기형적인 생산 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광주글로벌모터스(GGM)에서 위탁 생산되는 캐스퍼 전기차는 물량의 약 90%가 유럽, 일본 등 해외로 향한다. 초기 생산 물량을 해외 시장 공략에 쏟아붓는 동안, 정작 1년 넘게 기다린 내수 고객들은 품질 안정화의 ‘실험 대상’이 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현대차 2026 캐스퍼 일렉트릭 측면 (출처=현대차)
한 자동차 산업 전문가는 “신차 출시 초기에 대규모 해외 물량에 집중하다 보면 내수 시장의 초기 품질 관리가 상대적으로 미흡해질 수 있다”며 GGM의 첫 전기차 양산이라는 점도 도전 과제였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현대차 캐스퍼 일렉트릭 실내 (출처=현대차)
AS 대란, 수리 받기가 ‘하늘의 별 따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늘어나는 수리 건수를 서비스 인프라가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현대차의 직영 서비스센터는 예약조차 쉽지 않고, 부품 수급마저 늦어져 수리를 맡긴 차주들은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실정이다.
캐스퍼 일렉트릭 (출처=현대차)
현대차는 안전 운행에 치명적인 결함은 아니라는 판단하에 리콜 대신 무상수리로 대응하고 있지만, 소비자들은 잦은 고장과 기약 없는 수리 대기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경쟁 모델인 기아 레이 EV의 출고가 안정된 상황에서, 캐스퍼 일렉트릭이 ‘가성비’라는 무기 뒤에 숨겨진 품질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쌓아 올린 인기는 한순간에 무너져 내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