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성의 시대, V6 심장을 고집한 ‘상남자 SUV’의 마지막 여정

2024년 7월, 한 시대가 막을 내렸다. 도로 위를 압도하는 존재감으로 ‘아빠들의 드림카’라 불렸던 기아 모하비가 17년의 여정 끝에 공식 단종됐다. 모두가 연비와 효율을 외칠 때, 묵묵히 V6 디젤 엔진과 강철 프레임의 길을 걸었던 ‘마지막 상남자 SUV’의 퇴장이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생산 종료 소식과 함께 중고차 시장에서 모하비의 몸값은 오히려 수직 상승하며 그 가치를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기아 모하비 측정면 (출처=기아)

강철 뼈대와 V6 심장, 숫자가 말해주는 가치

모하비의 핵심은 뼈대부터 다르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도심형 SUV가 승용차처럼 모노코크 바디를 사용하는 것과 달리, 모하비는 강철 프레임 위에 차체를 올린 ‘바디 온 프레임’ 방식을 고수했다. 이 정통 오프로더 방식은 험로 주행 시 차체의 뒤틀림을 억제하고, 막강한 내구성과 견인력을 자랑한다. 캠핑 트레일러를 끌거나 험지로 떠나는 운전자들에게 이보다 더 든든한 보험은 없었다.
기아 모하비 실내 (출처=기아)
그 중심에는 최고 출력 257마력, 최대 토크 57.1kg·m의 힘을 뿜어내는 3.0리터 V6 디젤 엔진이 있었다. 전장 4,930mm, 전폭 1,920mm의 거구를 망설임 없이 밀어붙이는 이 심장은 모하비의 상징 그 자체였다. 물론 대가는 있었다. 9km/L대의 아쉬운 연비와 단단한 승차감은 분명한 단점이었다.

하지만 시장은 이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을 가치를 인정했다. 5천만 원을 훌쩍 넘는 신차 가격에도 불구하고, 2~3년 된 모델이 여전히 3천만 원 중후반에서 4천만 원대에 거래되는 놀라운 가격 방어율을 보여준다. 이는 ‘감가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례적인 현상이며, 이제는 단종으로 인해 희소성까지 더해졌다.
기아 모하비 측후면 (출처=기아)

팰리세이드는 줄 수 없는 단 하나의 매력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모하비에 열광할까? 정답은 ‘대체 불가능성’에 있다. 현대 팰리세이드와 같은 세련된 도심형 SUV가 제공하는 안락함과 첨단 편의 기능은 분명 매력적이다. 하지만 모하비는 그 반대편에서 완전히 다른 가치를 제공했다.
포장도로보다 비포장도로에서 더 큰 안정감을 주고, 어떤 길이든 돌파할 수 있을 것 같은 기계적 신뢰감, 그리고 도로 위 모든 차를 압도하는 묵직한 존재감. 이것이 바로 모하비 마니아들이 기꺼이 연비와 승차감을 포기하면서까지 이 차를 선택하는 이유다. 넉넉한 7인승 공간은 패밀리카로서의 역할도 충분히 해냈다.

전설의 시작, 모하비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전동화의 거센 물결 속에서 V6 디젤 프레임바디 SUV는 이제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유물이 될 운명이다. 모하비의 단종은 단순한 모델의 퇴장을 넘어, 내연기관 시대 ‘진짜 SUV’의 종언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기아 모하비 실내 (출처=기아)
이제 신차로는 만날 수 없기에, 잘 관리된 모하비 중고차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독보적인 가치를 뽐낼 것이다.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한 시대의 아이콘이자 로망으로 기억될 이 강인한 SUV. 그 전설은 중고차 시장에서 이제 막 시작됐다.

동치승 기자 dong@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