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 똑똑해진 인공지능, 100년 전 디자인에 담은 이유

인간의 뇌를 닮은 AI와 태양광 페인트, 자동차의 패러다임을 바꾸다

태양광으로 1년에 12,000km를 스스로 달리는 자동차가 나타났다. 공상 과학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메르세데스-벤츠가 선보인 쇼카, ‘비전 아이코닉’은 자동차의 과거와 미래를 한 몸에 담아낸, 그야말로 ‘달리는 예술 작품’이다. 이는 단순한 구경거리를 넘어, 벤츠가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갈지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이정표다.

1930년대로의 시간여행, 디자인에 취하다

‘비전 아이코닉’의 첫인상은 시간을 거스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길게 뻗은 보닛과 유려하게 떨어지는 지붕선은 자동차 디자인의 황금기였던 1930년대 아르데코 스타일을 완벽하게 소환한다. 특히 시선을 사로잡는 건 단연 그릴이다. 벤츠의 클래식 모델에서 영감을 받은 세로형 그릴은 스모크 글라스와 조명이 어우러져 전기차 시대에 걸맞은 ‘빛의 조각’으로 다시 태어났다. 실내는 더욱 파격적이다. ‘하이퍼 아날로그’라는 이름 아래, 온통 스크린으로 도배되는 요즘 차들과 정반대의 길을 걷는다. 비행선 ‘제플린’을 닮은 거대한 유리 계기판, 진주와 황동으로 장식된 대시보드는 마치 100년 전 유럽의 고급스러운 살롱에 앉아있는 듯한 경험을 선사한다. 모든 것을 터치스크린에 밀어 넣는 시대에 벤츠가 던지는 가장 우아한 반격인 셈이다.

껍데기는 클래식, 속은 2030년 미래 기술

이 고풍스러운 겉모습 속에는 현존하는 가장 진보한 기술이 숨 쉬고 있다. 벤츠가 개발 중인 ‘솔라 페인트’ 기술은 차체에 페인트를 칠하는 것만으로 태양광 패널을 입히는 혁신이다. 희귀한 자원 없이도 차 스스로 연간 12,000km를 달릴 에너지를 만들어내니, 완전한 친환경 미래를 향한 벤츠의 집념이 엿보인다. 자동차의 두뇌는 더욱 놀랍다. 인간의 뇌신경 구조를 본뜬 ‘뉴로모픽 컴퓨팅’ AI가 탑재됐다. 기존 방식보다 에너지 효율은 90%나 높고, 반응 속도는 10배나 빠르다. 이 똑똑한 두뇌 덕분에 고속도로에서는 운전자의 개입이 전혀 필요 없는 레벨 4 수준의 완전자율주행이 가능하다.

EQS는 잊어라, S클래스의 화려한 귀환 예고

‘비전 아이코닉’은 그저 꿈만 같은 콘셉트카로 끝나지 않을 전망이다. 시장에서 다소 아쉬운 반응을 얻었던 전기차 라인업 ‘EQ’ 시리즈, 특히 EQS 이후 벤츠는 다시 ‘S클래스’ 중심의 전략으로 돌아설 채비를 하고 있다. ‘비전 아이코닉’에 담긴 디자인과 철학이 바로 차세대 S클래스의 얼굴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경쟁자인 BMW가 ‘노이에 클라쎄’를 앞세워 미래 기술력을 과시하는 동안, 벤츠는 브랜드가 가장 잘하는 방식으로 응수했다. 100년 넘게 쌓아온 헤리티지를 가장 현대적인 기술과 융합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아이코닉 럭셔리’를 선보인 것이다. 이 ‘달리는 예술품’이 도로 위를 누빌 진짜 차세대 S클래스의 모습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이석호 기자 shlee@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