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만 벌써 10번째 생산 중단, 전기차 보조금 소진에 직격탄
전기차 라인은 ‘스톱’, 내연기관은 ‘풀가동’…울산 공장의 엇갈린 희비
현대자동차의 대표 전기차 모델 아이오닉 5가 또다시 멈춰 선다. 현대차는 다음 달 1일부터 12일까지 울산 1공장 2라인의 가동을 일시 중단한다고 밝혔다. 해당 라인은 아이오닉 5를 주력으로 생산하는 곳으로, 올해 들어서만 벌써 10번째 맞이하는 휴업이다. 한때 국산 전기차의 상징과도 같았던 모델의 연이은 생산 차질 소식에 시장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현대차는 “12월 물량 계획이 정상 운영 기준에 미달해 휴업 조정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생산량 조절이지만, 그 이면에는 꽁꽁 얼어붙은 전기차 수요가 자리 잡고 있다.
보조금 끊기자 얼어붙은 시장
전기차 시장의 ‘생명줄’이었던 보조금이 고갈되자 시장은 즉각 차갑게 반응했다. 환경부에 따르면 현재 서울을 포함한 국내 대부분 지역에서 올해 전기차 구매 보조금 신청이 마감된 상태다. 아이오닉 5의 경우 트림에 따라 500만~600만 원에 달하는 보조금이 지급된다.
소비자 입장에선 당장 수백만 원의 할인을 받지 못하는데 연말에 무리해서 차를 구매할 이유가 없다. 구매를 내년으로 미루는 수요가 급증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실제 국내 전기차 판매량은 지난 9월 2만 8528대에서 10월 2만 대로 급감했으며, 연말에는 감소 폭이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보조금 정책의 공백이 곧바로 기업의 생산 차질과 실적 하락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고스란히 드러난 셈이다.
수출마저 흔들 미국 현지 생산 변수
문제는 내수 시장뿐만이 아니다. 수출 전선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현대차그룹이 미국 조지아주에 건설한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가 본격적으로 가동을 시작한 것이 국내 공장 가동률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대응하기 위한 현지 생산 확대 전략에 따라, 올해 1~10월 HMGMA는 아이오닉 5와 아이오닉 9 등 5만 3194대의 전기차를 생산했다. 미국 판매량의 상당 부분을 현지에서 충당하기 시작한 것이다. 같은 기간 울산 공장의 아이오닉 5 생산량은 3만 3967대로 줄었고, 수출 물량 역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글로벌 생산 전략의 변화가 국내 공장의 역할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하는 대목이다.
전기차는 멈춰도 내연기관은 풀가동
역설적이게도 아이오닉 5 생산 라인이 멈추는 동안, 같은 공장의 다른 라인들은 연말 특근에 돌입하며 분주하게 돌아간다. 코나, 아반떼 등 내연기관차와 싼타페, 팰리세이드 등 하이브리드 모델을 생산하는 라인은 크리스마스를 포함한 연말 특근 체제에 들어간다.
제네시스 G80, G90 등을 생산하는 5공장 역시 특근을 검토 중이다. 이는 전기차 수요는 주춤하고 있지만, 하이브리드와 내연기관 모델은 여전히 견조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시장의 현실을 반영한다. 전동화로의 전환이 예상보다 더디게 진행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결국 현대차는 보조금과 관세라는 두 가지 외부 변수에 발목이 잡힌 채, 중장기적인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라는 큰 숙제를 안게 됐다.
서혜지 기자 seog@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