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낡은 규격에 갇힌 주차장, 5m 넘는 팰리세이드·카니발에겐 너무 좁다.
매일 반복되는 문콕 불안과 주차 갈등, 단순히 운전자 매너 문제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를 알아본다.
“겨우 주차했는데, 내릴 수가 없네.” 최근 대형 패밀리 SUV를 구매한 운전자라면 한 번쯤 겪어봤을 법한 상황이다. 현대 팰리세이드, 기아 카니발 등 국산차의 크기는 해마다 커지며 ‘거함’에 가까워지고 있지만, 이들을 품어야 할 주차 공간은 수십 년 전 과거에 머물러 있다.
이로 인한 주차 갈등은 이제 일부의 불평을 넘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번지는 양상이다. 이는 단순히 운전자의 양심이나 주차 실력 탓으로만 돌릴 수 없는 구조적 한계 때문이다. 낡아빠진 법규, 차체 인플레이션, 그리고 비좁은 공간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가 바로 이 문제의 핵심을 관통한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5m 거구 가두는 2.5m의 족쇄
문제의 시작은 숫자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신형 팰리세이드의 전장(차량 길이)은 5,060mm, 카니발은 5,115mm에 달한다. 하지만 현행 주차장법 시행규칙이 정한 일반형 주차구획의 최소 크기는 폭 2.5m, 길이 5.0m에 불과하다.
법적 최소 기준에 맞춰 지어진 대부분의 아파트나 공영 주차장에서 이들 차량은 주차선을 거의 완벽하게 채우게 된다. 길이가 5m를 넘는 차량은 필연적으로 앞부분이 통행로로 튀어나오고, 전폭이 1,900mm를 훌쩍 넘는 차체는 문을 열 공간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현실에서는 운전자를 매일 시험에 들게 하는 ‘합법적 고통’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30년 전 기준,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
국내 주차구획 폭은 과거 2.3m에서 2019년 2.5m로 소폭 넓어졌지만, 이는 최근 몇 년간 급격히 ‘벌크업’된 차량들의 증가 속도를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 일부 국가에서 권장 폭을 2.7m 이상으로 두는 것과 비교하면 여전히 정밀한 ‘칼주차’를 요구하는 수준이다.
실제로 전폭이 1.98m에 이르는 대형 SUV를 2.5m 너비의 칸에 주차한다고 가정해 보자. 양옆에 남는 공간은 모두 합쳐 약 52cm. 운전자가 완벽하게 중앙에 주차해도 한쪽 문을 열 수 있는 공간은 고작 26cm 남짓이다. 성인 한 명이 간신히 몸을 비집고 나와야 하는 이 상황은 결국 ‘문콕’ 사고의 잠재적 위험을 키우고 이웃 간 갈등의 불씨가 된다.
결국 ‘주차 빌런’과 ‘문콕’ 전쟁으로
이처럼 물리적 공간의 한계는 고스란히 사회적 갈등으로 이어진다. 문콕을 피하려 일부러 두 칸에 걸쳐 주차하는 이른바 ‘주차 빌런’이 등장하는가 하면, 상대적으로 공간이 넓은 기둥 옆이나 가장자리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보이지 않는 경쟁이 매일 밤 벌어진다.
큰마음 먹고 신차를 구매한 차주들은 주차할 때마다 옆 차에 흠집을 낼까 봐 노심초사해야 하고, 작은 상처에도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한다. 이를 단순히 개인의 주차 매너 문제로만 치부하기엔, 공간 자체가 주는 스트레스가 너무나도 큰 상황에 이르렀다.
칸 넓히자니 대수 줄고, 뾰족한 수 없나
가장 간단한 해결책은 주차 칸을 넓히는 것이다. 주차 폭을 2.6m나 2.7m로 확대하면 대형차 운전자들의 고충은 크게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동일한 면적에 주차할 수 있는 차량 대수가 10~20%가량 감소한다는 치명적인 문제가 뒤따른다.
가뜩이나 주차 공간이 부족한 수도권 도심에서 주차 면수 감소는 또 다른 민원과 갈등을 낳을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신축 건물부터 규격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과, 일정 크기 이상의 차량에 대해서는 별도의 주차 요금을 부과하는 등 정책적 관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엇갈린다. 차량 크기 인플레이션과 낡은 규제, 도심 공간의 한계가 맞물린 이 난제를 풀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의 주차 전쟁은 앞으로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오종학 기자 fivejh@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