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적 판매 100만 대 앞두고 등장한 뜻밖의 변수, 유럽 전기차 시장 판도 바뀌나
중국 견제하려다 애꿎은 K-전기차만 피해? 현대차그룹의 셈법 복잡해졌다
현대차와 기아가 유럽 전기차 시장에서 누적 판매 100만 대라는 대기록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하지만 마냥 축포를 터뜨리기엔 이르다. 유럽연합(EU)이 꺼내 든 새로운 규제 카드가 예기치 못한 변수로 떠오르면서다. 표면적으로는 중국을 겨냥했지만, 그 파장이 국내에서 생산해 수출하는 ‘K-전기차’에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보조금 지급 기준 변경, 부품 현지 조달 의무화, 그리고 이에 따른 공급망 재편이라는 세 가지 거대한 파도가 현대차그룹을 향해 밀려오고 있다.
유럽 100만 대 금자탑 눈앞에 뒀는데
현대차그룹의 유럽 전기차 시장 성적은 괄목할 만하다. 2014년 기아 쏘울 EV를 시작으로 유럽 시장의 문을 두드린 이래, 가파른 성장세를 보여왔다. 특히 지난해에는 현대차와 기아를 합쳐 총 18만 3,912대의 전기차를 판매하며 연간 최다 실적을 경신했다.
이러한 기세에 힘입어 지난해 말까지 유럽 누적 판매량은 91만 5,996대를 기록했다. 현재 판매 추세를 고려하면 올 상반기 내 100만 대 돌파는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 아이오닉 5, EV6 등 경쟁력 있는 모델들이 현지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며 꾸준한 수요를 창출한 결과다.
중국 겨냥한 EU의 칼날, 방향이 틀렸다
문제는 유럽연합(EU)의 새로운 정책 움직임이다. 최근 논의 중인 법안 초안에 따르면, 전기차 보조금 지급 요건이 대폭 강화될 전망이다. 핵심은 EU 역내에서 최종 조립되는 것을 넘어, 배터리를 제외한 부품의 70% 이상을 현지에서 조달해야 한다는 조항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유럽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는 중국산 전기차를 견제하기 위한 조치다. 하지만 이 규제는 원산지를 따지기 때문에, 한국에서 생산해 유럽으로 수출하는 현대차와 기아의 전기차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보조금은 전기차의 가격 경쟁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될 경우 실질적인 판매 가격 인상이 불가피해,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기 어려워진다.
생산기지 이전? 현대차의 고민 깊어진다
이번 규제안이 더욱 뼈아픈 이유는 현대차그룹의 생산 구조 때문이다. 현재 유럽에서 판매되는 아이오닉 5, EV6, 니로 EV 등 주력 전기차 모델 대부분은 울산, 광명 등 국내 공장에서 생산돼 수출된다. 체코와 슬로바키아에 현지 생산 공장이 있지만, 아직 전기차 전용 라인업 전환이나 핵심 모델 생산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규제가 현실화된다면 현대차그룹은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가격 경쟁력 약화를 감수하고 현재의 수출 구조를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대규모 투자를 통해 유럽 현지 생산을 확대하고 공급망을 전면 재편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공장을 하나 더 짓는 문제를 넘어, 부품 공급망 전체를 유럽 중심으로 재설계해야 하는 복잡한 과제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보호무역주의 장벽 앞에서 현대차그룹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서혜지 기자 seog@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