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카 감성 담은 4999대 한정판, 문제는 그래픽카드

전기차 ‘루체’ 논란 속 HP와 협업… “자동차나 잘 만들지” 엇갈린 반응



페라리가 첫 순수 전기차 ‘루체’ 공개로 시끄러운 와중에 또 다른 파격 행보를 보였다. 이번엔 자동차가 아닌 860만 원짜리 초고가 AI 노트북이다. HP와 손잡고 내놓은 이 ‘한정판 노트북’을 두고 팬들 사이에서는 ‘엇갈린 반응’이 터져 나온다. 과연 페라리는 왜 슈퍼카가 아닌 노트북에 힘을 쏟는 것일까.

슈퍼카 엔진룸 옮긴 디자인, 한정판 노트북의 정체



논란의 중심에 선 제품은 ‘HP 스쿠데리아 페라리 AI PC’다. 이 노트북의 가장 큰 특징은 페라리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담은 디자인이다. 페라리의 한정 생산 모델 ‘데이토나 SP3’에 적용된 상징적인 ‘로소 마그마 레드’ 색상을 그대로 가져왔다.

단순히 색상만 흉내 낸 것이 아니다. 하판에는 슈퍼카에 사용되는 카본 파이버 소재와 함께 내부가 들여다보이는 투명 패널을 적용해 마치 슈퍼카의 엔진룸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가격은 5599달러, 우리 돈으로 약 860만 원에 달한다. 전 세계 4999대만 한정 판매돼 희소성을 더했다.



여기에 페라리 전용 서체와 RGB 키보드, 전용 가죽 슬리브까지 제공하며 소장 가치를 극대화했다. 페라리 팬이라면 군침을 흘릴 만한 구성이다.

860만원 가격표, 그런데 성능은 왜 이럴까



하지만 화려한 외관과 달리 속을 들여다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인텔 코어 울트라 9 프로세서와 64GB 메모리, 1TB SSD 등 전반적인 사양은 최상급이다. 문제는 그래픽 성능이다.

핵심인 외장 그래픽카드가 빠졌다. 이 때문에 800만 원이 넘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최고 사양의 게이밍 노트북이나 전문 영상 편집용 워크스테이션과는 거리가 멀다. 프리미엄 업무용 노트북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만약 당신이 860만 원으로 최고의 성능을 내는 노트북을 찾는다면, 이 제품은 선택지에 없을 가능성이 높다. 페라리라는 이름값과 디자인에 대한 비용이 상당 부분 포함된 셈이다.

전기차 논란 속 페라리, 진짜 노림수는 따로 있다



이런 상황에 일부 팬들이 “노트북 만들 시간에 전기차나 제대로 만들라”는 비판을 쏟아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페라리는 최근 공개한 첫 전기차 ‘루체’에 내연기관의 감성을 살리기 위해 인위적인 엔진음을 탑재하겠다고 밝혀 정체성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이런 와중에 본업과 무관한 고가 노트북을 내놓자 비판 여론이 커진 것이다.



반면 업계에서는 이번 노트북 출시를 다른 시각으로 해석한다. 단순한 외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자동차 제조사를 넘어 의류, 시계, 테마파크 등을 아우르는 ‘럭셔리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의 확장을 가속화하는 전략의 일환이라는 분석이다.

HP와의 협업은 페라리의 영향력을 IT 기기 영역까지 넓히려는 포석으로 읽힌다.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더라도 페라리 브랜드가 주는 특별한 가치를 소비하려는 새로운 고객층을 공략하겠다는 의도다. 전환기를 맞은 페라리의 이번 행보가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신의 한 수’가 될지, 아니면 팬들의 비판만 키우는 ‘무리수’가 될지는 시간이 증명할 것이다.

오종학 기자 fivejh@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