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를 거대한 ‘이동식 ESS’로 활용하는 시대가 온다
국내 실증 성공으로 상용화 기대감 커져
지금까지 전기차는 전력망의 에너지를 소비하는 역할에 그쳤다. 하지만 이제는 전기를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거꾸로 전력망에 공급하는 생산자의 역할까지 넘보고 있다. 국내 일반 고객 가정에서 양방향 충·방전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면서, 기술적 장벽이 상당 부분 해소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자동차 회사가 전력망에 눈 돌리는 이유
전기차의 대중화는 전력 수급 관리에 새로운 과제를 안겨주었다. 수백만 대의 전기차가 동시에 충전기에 몰릴 경우 전력망에 가해지는 부담은 상상 이상이다. 현대차그룹이 V2G에 주목하는 배경에는 바로 이 지점이 있다.전기차에 탑재된 고용량 배터리를 역으로 활용하면,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피크타임에 안정적인 예비 전력원으로 기능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이오닉 5 롱레인지 모델의 77.4kWh 배터리는 일반 가정에서 3~4일간 사용할 수 있는 막대한 전력량이다. 수만 대의 차량이 전력망에 연결되면 소규모 발전소와 맞먹는 효과를 내는 셈이다.
내 차를 이동식 ESS로 바꾸는 V2G 기술
V2G의 작동 원리는 비교적 간단하다. 전기 요금이 저렴한 심야 시간대에 차량을 완전히 충전한 뒤, 요금이 비싼 낮 시간대나 전력 사용량이 많은 피크타임에 남는 전력을 전력망에 되파는 방식이다. 차주는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차익으로 수익을 얻는다.만약 당신이 출근 후 회사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는 직장인이라면, 낮 시간 동안 사용하지 않는 차량의 배터리 전력을 판매해 부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V2G가 본격화되면 차량 1대당 연간 수십만 원에서 최대 100만 원 이상의 수익 창출도 가능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번 현대차그룹의 실증 사업은 제주도에 거주하는 아이오닉 5 고객의 자택에서 실제로 진행됐다. 이는 실험실 환경을 벗어나 실제 국내 전력망 환경에서 V2G의 안정성과 사업성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현대차그룹은 향후 V2G 기술을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 환경에서도 실증하며 상용화 속도를 높일 계획이다.
오종학 기자 fivejh@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