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고지 증명제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했다.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에서 대형 버스마저 멈춰 세운 진짜 이유.
경적 소리 대신 침묵이 흐르는 도로, 불법주차 차량이 사라진 골목. 여행객이 며칠간 걸으며 발견한 일본의 운전 문화.
일본 여행의 기억은 종종 유명 관광지가 아닌 도로 풍경에서 더 선명해진다. 차는 끊임없이 오가지만 경적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고, 도로변을 점령한 불법주차 차량도 찾아보기 힘들다. 며칠간 보행자로 거리를 걸어보니, 일본의 자동차 문화가 왜 유독 조용하고 정돈된 인상을 주는지 알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자동차들의 청결 상태였다. 며칠간 비가 내렸음에도 흙탕물을 뒤집어쓴 차를 보기 어려웠다. 승용차는 물론 공사 현장의 덤프트럭이나 시내버스까지 휠과 차체가 깔끔하게 관리된 모습은 단순한 대기 환경의 차이로만 보기 힘들었다. 차량 청결이 일상적인 관리의 영역으로 자리 잡은 분위기다.
하이브리드나 소형 전기차 비중이 높아 주행 소음 자체가 적은 점도 한몫했다. 자동차가 많은 대도시임에도 시끄럽다는 느낌보다 정돈됐다는 인상이 먼저 남는 배경이다.
경적과 불법주차가 사라진 도로는 놀라울 만큼 조용했다
차량 흐름이 많은 도쿄 도심에서도 경적 소리는 이례적인 사건에 가까웠다. 앞차가 조금 늦게 출발하거나 보행자 때문에 흐름이 끊겨도 뒤차는 묵묵히 기다렸다. 운전자 입장에서 불과 몇 초의 지체를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것만으로 도로 전체의 분위기는 크게 달라진다.
거리 풍경을 바꾼 핵심은 불법주차의 부재였다. 일본은 1962년부터 차량 구입 시 주차 공간 확보를 증명해야 하는 ‘차고지 증명제’를 시행해왔다. 그 결과 왕복 2차선 도로나 골목길 갓길이 주차 차량으로 막히는 일이 거의 없다. 시야를 가리는 차가 없으니 횡단보도를 건널 때 보행자의 안전 체감도가 눈에 띄게 높아진다.
불법주차 차량 한 대가 사라지는 것만으로 도로의 안전감이 얼마나 달라지는지는 한국에 돌아와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되는 부분이다. 여기에 잘 관리된 노면 덕분에 포트홀을 피하려 차량이 급히 방향을 트는 위험한 장면도 거의 목격하기 힘들었다.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에서 진짜 차이를 느꼈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에서 나왔다. 보행자가 횡단보도에 발을 내딛자 멀리서 오던 대형 버스가 속도를 줄여 멈춰 섰다. 운전기사는 보행자가 완전히 길을 건널 때까지 조용히 기다릴 뿐이었다.
차가 우선이고 사람이 그 틈을 이용하는 게 아니라, 보행자의 움직임에 맞춰 차량이 흐름을 멈추는 방식이었다. 운전석 위치나 주행 방향이 낯설었지만, 오히려 걷는 내내 마음이 편안했던 이유다. 며칠간 반복된 이런 경험은 단순한 개인의 배려가 아닌, 하나의 교통 문화로 느껴지게 했다.
결국 도로를 편안하게 만드는 건 차가 적어서도, 길이 넓어서도 아니었다. 운전자 한 명이 조금 늦게 가는 걸 감수하고, 보행자 한 명이 먼저 지나가도록 기다리는 순간들이 모여 거리의 분위기를 바꾼다. 일본에서 운전을 전혀 하지 않았음에도 도로 문화가 깊게 기억에 남은 것은, 좋은 운전의 혜택이 운전자보다 길을 걷는 사람에게 먼저 와닿았기 때문이다.
오종학 기자 fivejh@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