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시장 뒤흔든 25% 관세 폭탄, EV4·전기 픽업 출시 사실상 올스톱
현대차그룹 전동화 전략까지 ‘빨간불’... ‘가성비’ 무너질 위기
기아가 북미 시장을 겨냥해 야심 차게 준비해 온 핵심 전기차 전략이 전면 재검토에 들어가며 업계의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한때 시장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EV4의 출시가 또다시 중단됐으며, 북미 전용으로 개발되던 전기 픽업트럭 프로젝트 역시 사실상 멈춰 섰다.
이는 미국 정부가 한국산 전기차에 부과하는 고율의 관세 때문이다. 기아 미국법인 관계자는 “최대 25%에 달하는 관세가 사업성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관세가 안정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사업성 평가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EV4와 전기 픽업 모두 ‘무관세’를 전제로 사업 타당성을 검토했던 만큼, 예상치 못한 관세 폭탄은 기아의 북미 출시 전략 전체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
관세 장벽에 막힌 EV4와 전기 픽업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것은 EV4와 전기 픽업트럭이다. 두 모델 모두 관세 부담이 없다는 가정 하에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계획이었으나, 현실은 달랐다.
특히 기아가 북미 전략의 한 축으로 발표했던 전기 픽업트럭은 미국의 수입 픽업트럭 관세, 이른바 ‘치킨세(Chicken Tax)’ 25%라는 결정적인 장벽에 부딪혔다. 이미 포드의 F-150 라이트닝 같은 현지 모델조차 가격 변동과 생산 중단으로 고전하는 상황에서, 25%의 관세를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기아 전기 픽업이 경쟁력을 갖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판단이다.
EV4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다. 올해 초 생산을 시작했지만, 미국 출시 일정은 정해지지 않았고 캐나다 출시마저 2026년으로 밀렸다. 기아는 “관세 환경이 바뀌기 전까지 북미 출시는 단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사실상 관망세로 돌아섰다.
유일한 희망 EV3 그러나 불확실성 여전
현재 계획대로 추진되는 모델은 소형 SUV인 EV3가 유일하다. EV3는 미국에서 수요가 높은 차급이라는 점에서 우선순위가 높게 책정됐지만, 이 모델 역시 관세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당초 기아는 EV3와 EV4 모두 4만 달러 이하의 공격적인 가격대를 목표로 했다. 하지만 관세가 이 가격 구조를 흔들면서 초기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설상가상으로 미국 시장은 연방 세금 혜택 축소 이후 전기차 판매 비중이 10%대에서 4% 수준으로 급감하는 등 수요 둔화가 뚜렷하다.
기아는 EV3의 수요가 충분할 것으로 기대하면서도 “가격과 공급 모두 재평가가 필요하다”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고 있다. EV3가 계획대로 출시된다 하더라도, 전동화 포트폴리오 전체가 흔들린 현실은 기아에게 큰 부담이다.
현대차그룹 북미 전략 전체가 흔들린다
이번 사태는 단순히 기아 한 브랜드의 문제를 넘어, 현대차그룹 전체의 북미 전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는 그동안 ‘가성비 높은 전기차’ 이미지를 무기로 북미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늘려왔다. 하지만 고율의 수입 관세가 장기화될 경우, 그룹의 가장 큰 강점인 가격 경쟁력이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다.
기아는 지난 8개월간 관세 부담을 소비자 가격에 반영하지 않고 버텨왔지만, 이를 장기간 유지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미국 조지아 공장에서 일부 생산 라인을 내연기관 모델로 전환하며 대응에 나섰지만, 생산 유연성에는 한계가 뚜렷하다. 업계에서는 기아가 일부 모델의 현지 생산 전환, 출시 추가 지연, 심지어 포트폴리오 축소까지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 중인 것으로 보고 있다. 당분간 현대차그룹의 북미 전동화 전략은 관세라는 거대한 변수에 따라 크게 흔들릴 전망이다.
서혜지 기자 seog@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