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30만 대 시대, 테슬라 앞세운 수입 전기차 공세에 국산차 ‘휘청’
단순 가격 경쟁은 끝났다…소프트웨어·자율주행 기술이 진짜 승부처

E클래스 / 벤츠


언제부터인가 도로 위 풍경이 달라졌다. 귀를 찢는 듯한 디젤 엔진 소음은 찾아보기 힘들어졌고, 가솔린 차량의 존재감도 빠르게 희미해지고 있다.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은 소리 없는 모터음과 낯선 수입차 엠블럼이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수입차 시장은 사상 처음으로 연간 판매 30만 대 돌파가 확실시된다. 30년 전 고작 7000여 대에 불과했던 시장이 40배 이상 폭발적으로 성장한 셈이다. 이제 수입차는 더 이상 일부 부유층의 전유물이 아닌, 성능과 상품성을 따지는 합리적인 소비자들의 기본 선택지 중 하나로 완벽히 자리 잡았다.

전기차가 바꾼 시장의 판도



G90 / 제네시스


이러한 시장 변화의 중심에는 단연 ‘전기차’가 있다. 현재 판매되는 수입차 10대 중 8대 이상이 하이브리드 혹은 순수 전기차다. 특히 전기차는 전년 대비 점유율이 10%포인트 이상 급등하며 내연기관차의 자리를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이 거대한 전환을 이끈 것은 미국의 전기차 기업 테슬라다. 테슬라 ‘모델Y’는 올해 들어서만 4만 대 이상 팔려나가며 부동의 수입차 1위였던 벤츠 E클래스를 압도적인 차이로 따돌렸다. 국내 수입 전기차 2대 중 1대는 테슬라일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최근에는 완전자율주행(FSD) 기능까지 국내 공식 허용되면서 테슬라는 단순한 전기차 브랜드를 넘어 미래 모빌리티 기술을 선도하는 혁신의 아이콘으로 이미지를 굳혔다. 자동차 시장의 ‘전동화’는 더는 선택이 아닌,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이 됐다.

추격 나선 국산차의 반격 카드



물론 수입 전기차의 파상공세에 국산 브랜드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레벨3 수준의 자율주행 기술(HDP)을 개발, 제네시스 G90과 기아 EV9 등 플래그십 모델을 중심으로 상용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아직 고속도로 등 특정 조건에서만 작동하는 제한적인 수준이지만, 핵심 소프트웨어 기술을 직접 개발하고 글로벌 기업들과의 협력을 강화하며 기술 격차를 좁히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단순한 하드웨어 조립을 넘어 소프트웨어와 사용자 경험(UX) 중심으로 체질을 바꾸려는 시도는 긍정적이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실제로 체감하는 기술적 완성도와 안정성의 차이를 얼마나 빠르게 극복할 수 있을지가 생존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모델 Y / 테슬라


까다로워진 소비자 진짜 승부는 지금부터



현재 국내 시장에는 약 30개의 수입차 브랜드가 진출해 500종이 넘는 모델을 판매 중이다. 여기에 전기차 시장의 성장을 발판 삼아 BYD, 지커, 폴스타와 같은 신흥 강자들이 속속 상륙하고 있다. 전통의 강자 BMW와 벤츠 역시 고급 전기차 라인업을 공격적으로 확장하며 한 치의 양보 없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소비자들은 이제 더 이상 특정 브랜드 이름값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혁신적인 디자인, 주행 성능, 소프트웨어의 안정성과 편의성, 그리고 유지 보수 비용까지 꼼꼼하게 따져본다. 한 자동차 업계 전문가는 “가격이나 보조금 정책 변화에도 불구하고 기술력과 브랜드 경험을 중시하는 수입차 수요는 쉽게 꺾이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수입차는 더는 틈새시장이 아닌, 국내 자동차 시장의 핵심 축으로 성장했다. 가격 경쟁력만으로는 안방을 지킬 수 없다는 경고음이 현대·기아에 더욱 크게 울리는 이유다. 국산차가 쌓아온 대량 생산 능력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반격이 성공할 수 있을지, 전기차 시대의 진정한 승부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모델 Y / 테슬라


7X / 지커


서혜지 기자 seog@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