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캐스퍼 일렉트릭, 해외에선 즉시 출고되는데 국내 소비자는 왜 2년 넘게 기다려야 할까.

생산량 90%가 수출 물량으로 배정되면서 중고차 가격이 신차를 뛰어넘는 기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캐스퍼 일렉트릭 /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현대차의 소형 전기 SUV 캐스퍼 일렉트릭이 국내 소비자들 사이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합리적인 가격과 뛰어난 상품성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정작 차량을 손에 넣기까지는 기약 없는 기다림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옵션을 더하면 대기 기간이 30개월에 육박하는 이 현상의 배경에는 크게 세 가지 구조적 문제가 얽혀있다. 생산 물량의 해외 집중, 특정 트림 우선 생산, 그리고 공장의 생산 능력 한계가 바로 그것이다. 그렇다면 왜 유독 국내 소비자들만 기나긴 기다림의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것일까?

지금 계약해도 2028년, 끝없는 대기 행렬



현재 캐스퍼 일렉트릭을 계약한 국내 소비자는 차량 인도를 위해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처지다. 2026년 4월 현재 프리미엄 및 인스퍼레이션 트림은 약 23개월, 크로스 트림은 25개월을 대기해야 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여기에 매트 컬러나 투톤 루프 같은 인기 옵션을 추가하면 대기 기간은 최대 30개월까지 늘어난다. 지금 당장 계약서에 서명해도 2028년 하반기에나 차를 받아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상위 트림은 10개월, 명백한 내수 차별 논란



이러한 장기 대기 상황 속에서 지난 3월 출시된 최상위 트림 ‘라운지’의 출고 기간이 약 10개월로 알려지면서 소비자들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 다른 트림이 2년 이상 걸리는 것에 비해 절반도 안 되는 기간이기 때문이다. 동일한 모델 내에서 트림별로 출고 시기가 극명하게 갈리면서 수익성이 높은 상위 트림을 우선 생산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라운지 트림은 기본 모델보다 670만 원 비싸며 고급 옵션이 다수 포함된다. 업계에서는 이 트림이 해외로 수출되지 않아 내수 물량 확보가 용이하고, 수익성이 높아 우선 생산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분석한다.

생산량 90%는 유럽으로, 국내 물량은 뒷전



국내 출고 지연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생산 물량의 절대다수가 해외 수출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차는 올해 캐스퍼 일렉트릭 생산량의 약 90%를 수출 물량으로 배정했다. 유럽에서는 ‘인스터(INSTER)’라는 이름으로 출시 6개월 만에 1만 대 판매를 돌파하는 등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일본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글로벌 수요 급증에 대응하기 위해 수출 물량을 우선 배정하면서 국내 소비자들은 후순위로 밀려난 셈이다. 여기에 생산을 담당하는 광주글로벌모터스(GGM) 공장의 제한적인 생산 능력도 출고 적체를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신차보다 비싼 중고차, 기이한 역전 현상



신차 출고가 기약 없이 늦어지자 중고차 시장에서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즉시 출고가 가능한 중고 캐스퍼 일렉트릭에 웃돈(프리미엄)이 붙어 신차 가격을 뛰어넘은 것이다. 전기차 보조금을 적용한 실구매가가 2,000만 원대 초반임에도, 긴 대기 시간을 견디지 못한 소비자들이 중고차 시장으로 몰리며 가격 역전 현상이 발생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캐스퍼 일렉트릭 계약자 커뮤니티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수출도 좋지만 내수 고객을 이렇게까지 홀대하는 것은 문제’, ‘계약 순서가 아니라 비싼 트림 순서로 차를 주는 것이냐’ 등 현대차의 판매 정책을 비판하는 글이 연일 올라오고 있다. 세계 시장에서 ‘올해의 전기차’로 선정되는 등 뛰어난 상품성을 인정받았지만, 그 영광의 이면에는 기약 없는 기다림에 지친 국내 소비자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오종학 기자 fivejh@news-wa.com